당신은 전쟁을 몰라요
예바 스칼레츠카 지음·손원평 옮김
생각의힘 | 272쪽 | 1만5000원
손이 떨리고 이가 딱딱 부딪쳤다. 두려움에 온몸이 쪼그라드는 것 같다. 지하실로 들어가자 공황증세가 다시 느껴졌다. 불안이 나를 잠식하는 게 느껴진다. 폭격이 있을 때마다 몸에 소름이 돋는다. 나는 친구들을 떠났다. 고통스럽다. 고요한 밤을 기대한다. 예전의 밤들이 그랬던 것처럼. 창고 안에서 계속 기도만 한다. 두려움이 우리를 가득 메운다. 신에게 평화를 달라고 요구하며 하루종일 기도한다. 삶의 매분, 매초에 절실하게 매달린다. ‘전면전’이라는 단어가 끔찍하게 느껴진다. 그 단어는 인간의 영혼에 공포를 불어넣는다. 내 영혼은 고통에 비명을 지른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밤이 점점 싫어진다. 알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찬 저녁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나를 삼킨다. 그 집은 내가 어린 시절을 보낸 곳이다. 내 집을 공격하는 건 내 일부를 공격하는 것과 똑같다. 심장이 짓밟힌 기분이다. 폭탄이 떨어질 때마다 심장이 얼어붙는다. 이렇게까지 죽음을 가까이 느낀 건 처음이다. 깊은 절망감에 빠져든다. 난 말하는 걸 멈췄다. 내 안에 꽉 뭉친 불안감을 느낀다. 멍한 기분이다.
불과 열흘 전 친구들과 열두 살 생일파티를 했던 예바가 쓴 일기의 일부분이다. 가족, 친구들과의 소소한 에피소드로 채워져야 했을 소녀의 일기는 느닷없이 찾아온 전쟁이라는 괴물로 인해 고통과 절망의 언어로 가득 찬다. 우크라이나 동쪽 도시 하르키우에 살던 예바는 러시아의 침공으로 아일랜드까지 피란을 가는 두 달여간의 여정을 일기장에 고스란히 기록했다. 10년, 20년이 지난 뒤 전쟁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어떤 식으로 망가뜨린지를 기억하기 위해.
지옥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 아이 특유의 천진난만함이 드러나는 문장은 먹먹하게 다가온다. 예바는 지하대피소에서 아이들과 보드게임을 하고, 친구들과 안부를 묻는 채팅 중 농담을 한다. 폭격을 피해 탄 열차 안에서 본 차창 밖의 갈대밭 풍경에 감탄하고, 헝가리 부다페스트의 아름다움에 반한다. 전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마땅히 누렸어야 할 평범한 일상이다. <아몬드> <튜브> <위풍당당 여우 꼬리> 등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글을 많이 써온 작가 손원평은 첫 번역 작업이 된 이 책의 말미에 이렇게 적었다.
“아이들은 전쟁에 대해 알 권리가 없다. 그 당연한 무지의 권리를 지켜주기 위해, 다시 말해 전쟁이 어떤 것인지 몰라야 하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존재들을 위해, 역설적으로 우리는 전쟁이 어떤 것인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예바와 그의 친구들이 영원히 잊을 수 없다고 말한 날. 2월24일.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지 어느덧 1년이 지났다. 포성은 멈춰야만 한다. 지금 당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