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수 담수화해 공업용수로…가뭄 대책으로 급부상

주영재 기자

포스코 광양제철소 하루 최대 3만t 공급

기상예측 활용 유연한 물관리 필요성도

[주간경향] 지난 2월 20일 전남 여수·광양의 국가산업단지를 찾았다. 반세기 만의 가뭄이 호남지역을 덮쳤는데, 국내 최대 석유화학·철강 업체가 입주한 이곳도 그 영향권 아래 있다. 공장 굴뚝이 아직은 거대한 수증기 구름을 내뿜고 있지만, 가뭄이 6월까지 지속되면 공장을 꺼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도 있다. 전남지역의 광역상수원인 주암댐의 저수율은 2월 23일 19시 현재 23.9%로 1980년 이후 최저수준을 기록했다. 주암댐과 수어댐에서 하루 70만t의 공업용수를 공급받는 여수·광양 국가산업단지는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하다.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공장 정비 일정을 조정하면서 동시에 제철소의 해수담수화 설비를 100% 가동하는 방법으로 대응하고 있다.

이날 방문한 포스코의 해수담수화 설비는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바닷물을 공업용수로 바꿔 공급하는 시설이다. 가뭄이 가시화하자 제철소는 댐에서 공급받는 물을 줄이고, 해수담수화 용수를 늘렸다. “비용은 몇 배 더 들지만 조금이라도 가뭄으로 인한 어려움을 줄이려고 해수담수화 설비를 최대한 가동하고 있습니다.” 김성득 포스코오앤엠 리더가 안내하면서 말했다. 사업비 509억원을 들여 2014년 8월부터 운영 중인데 하루 최대 3만t의 물을 공급할 수 있다. 포스코가 하루 사용하는 공업용수의 8분의 1에 해당한다.

지난 2월 20일 찾은 전남 광양 국가산업단지 내의 포스코 해수담수화 시설의 내부 모습. 해수의 이물질과 염분을 제거하는 전처리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주영재 기자

지난 2월 20일 찾은 전남 광양 국가산업단지 내의 포스코 해수담수화 시설의 내부 모습. 해수의 이물질과 염분을 제거하는 전처리 시설 등이 갖춰져 있다. 주영재 기자

“가뭄 대비 해수담수화 설비 늘려야”

“그전엔 크게 주목받지 못했는데, 가뭄이 들면서 빛을 발하고 있는 거죠. 한국수자원공사나 대학교에서도 우리 설비를 보러 많이 찾습니다. 아직까지 운영 노하우를 갖춘 곳은 여기밖에 없으니까요.” 김 리더가 설명을 이어갔다. 맨 처음에 취수를 하면, 1차 전처리 시설에서 바닷물 속에 있는 조개 같은 큰 입자성 물질과 게나 치어를 처리한다. 그후 2차 전처리 시설에서 바닷물 속에 있는 0.1㎛ 이상의 미생물을 걸러낸다. 그다음 고압펌프로 역삼투압 필터에 넣고 염분을 걸러낸다.

이렇게 걸러낸 물의 염분 농도는 0.001~0.002%로 낮아진다. “이온성분을 추가하면 음용수로도 충분히 쓸 수 있고, 좀더 품질을 높이면 반도체에 쓰는 초순수물로도 사용할 수 있습니다.” 농축된 바닷물도 쓰임새가 있다. 염분 농도가 농축을 거치면서 3%에서 7% 정도로 높아지는데 고압 상태라 에너지를 일부 회수해 사용할 수 있다. 농축된 바닷물에서 희귀광물을 추출해내는 연구도 벌이고 있다.

해수담수화 설비는 정부도 가뭄 대응책의 하나로 고려 중이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지난 1월 5일 이곳 시설을 둘러보고 해수담수화 기술을 가뭄 극복에 적극 활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김 리더는 “여수·광양 산업단지에 가뭄으로 급수가 중단되면, 하루에 몇백억씩 손해가 날 텐데요. 해수담수화 시설을 하나 갖추면 훨씬 손해를 덜 볼 수 있습니다. 산업단지에는 필수로 갖춰야 한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작은 규모로 도서 지역에 설치하면 가뭄 극복에 큰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실제 신안군은 완도처럼 섬 지역임에도 가뭄이 큰 문제가 되지 않고 있다. 미리 상수도관을 정비해 유수율을 50.3%에서 87.9%로 높였고, 신의면에 설치한 해수담수화 설비로 하루 300t씩 담수를 공급한 덕분이다. 강기성 신안군 상수도관리팀장은 “신의면은 지하수를 쓰고 있는데 바다에 인접해 장기간 사용하면서 염도가 음용기준에는 적합하지 않을 정도로 올랐다”면서 “그 물을 해수담수화 시설로 처리해 공급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다만 아직 필터와 같은 핵심 설비의 국산화율을 높여야 하는 과제가 있다. 높은 운영비를 감당할 수 있도록 전기료 감면과 같은 지원책도 필요하다. 음용수로 활용하는 방식은 조심히 접근해야 한다. 부산 기장의 경우 해수담수화 시설을 완성해놓고도 가동을 하지 못하고 있다. 이곳은 해수담수화로 음용수를 공급할 계획인데, 인근 원자력 발전소의 냉각수가 들어올 수 있다는 주민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장기적인 시각에서 물 공급망 정비해야

권현한 세종대 건설환경공학과 교수는 지금의 남부 가뭄은 기상가뭄과 농업가뭄, 수문학적 가뭄을 넘어 사회경제적 가뭄으로 진입했다고 설명했다. “일정 기간 강수량이 평균보다 감소하면 기상가뭄, 댐이 마르면 수문학적 가뭄이라고 하는데 그사이의 기간이 길어 2년 정도는 비가 오지 않아도 어느 정도 공급이 가능합니다. 지금 남부지방은 지난해부터 계속 비가 오지 않으면서 댐과 저수지를 채우지 못해 수문학적 가뭄이 지속됐고, 그러면서 시민도 절수로 인한 스트레스를 받고, 기업과 공장도 물을 아껴 써야 하는 상황이죠. 가뭄이 사회경제적 가뭄으로 확대된 단계에 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김준하 광주과학기술원 교수(지구·환경공학부)는 “평야가 많은 남부지방은 증발이 많은데 최근 5년간 비가 와서 빈 수원을 채우는 양이 100에서 80 혹은 60으로 줄었다”면서 “회복 탄력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기우제 지낸다고 해결할 수는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수담수화 설비로 물을 만들어내는 것은 물론, 물이 많은 곳에서 적은 곳으로 나눠주는 지능형 관망(스마트 워터 그리드)을 도입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런 대비가 없다면 “벚꽃 피는 순서대로 가뭄이 나타날 것”이라고 경고했다.

홍수와 가뭄이 발생하는 간격이 좁아진 만큼 물관리 정책은 더 유연해져야 한다. 권 교수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들면 어디에 정책의 초점을 둬야 할지 혼란이 예상된다”면서 “가뭄이 주는 사회적 영향을 생각하면 과감하게 물 공급망과 해수담수화 시설 등 인프라 투자에 나서야 한다”라고 말했다. 과거 댐을 지을 때 지역별로 할당량을 정했는데 30년 이상 시간이 흘러 과거와 양상이 많이 달라졌다. 그런데도 그 계약량을 그대로 지킨다면 비효율적이라는 지적도 했다. 과거 물을 많이 사용하지 않던 곳에 산업단지가 생기면 공업용수 수요가 높아진다. 신규 댐을 건설하지 못하는 상황에서 인근 지역의 물을 공급받으려고 하다 보면 또 그 지역의 반발에 직면할 수 있다. 권 교수는 “물 이용권에 대한 지역 간 갈등이 심해질 수 있고, 부처 간에도 이해관계가 엇갈릴 수 있기 때문에 물관리를 통할하는 국가물관리위원회의 권한과 위상을 강화해 실질적인 조정 기능을 갖추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환경부 관계자는 “3월 중 국가물관리위원회와 함께 남부지방 중장기 가뭄 대책을 마련할 계획”이라면서 “가뭄 빈도가 잦아지고 더 심각해지는 만큼 그에 걸맞은 대책 수립이 타당하다고 보고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정지훈 전남대 해양학과 교수는 물관리 분야에서 기상예측을 더 관심 있게 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강수량이 고르게 분포돼야 하는데 한 번에 쫙 온 후 너무 오랫동안 오지 않는 게 문제입니다. 평균으로 봤을 땐 그렇게 적은 건 아닌데 한 번에 100㎜씩 오는 것과 10㎜씩 오는 건 결과가 완전히 달라요. 10㎜씩 오면 다 자원이 되는데 한 번에 100㎜ 쫙 오면 상당 부분이 강물로 다 나갑니다. 수자원이 안 되죠.” 결국 기상예측이 물관리에서도 중요하다. 비가 얼마나 올지, 가뭄 가능성은 없는지 미리 안다면, 물관리를 좀더 정교하게 할 수 있다. “물관리에서 기후예측 정보를 좀더 적극적으로 사용했으면 좋겠어요. 선진국 대부분은 기상청과 수문(물관리) 기능이 통합돼 있습니다. 기상예측을 바로 물관리에 적용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 부분에서 협업이 지금보다 잘될 필요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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