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대가 두 개의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시작된 것은 국제관계의 현 상태를 조망하는 데 중요한 함의를 지닌다. 2021년 여름 아프가니스탄에서의 미군 철수와 탈레반의 재집권, 작년 초 러시아에 의한 우크라이나 침공 등은 단극체제의 균열과 자유세계질서 프로젝트의 종식을 재삼 확인하였다. 특히 두 에피소드 모두가 탈냉전기 워싱턴에 의해 추진된 거대 사회공학 구상이 모순에 부딪혀 나타난 후과라는 점에서, 각 사건은 오늘날 세계체제 요동의 원인이 아닌 징후로서 읽혀야 한다. 즉, 단선론적 역사철학에 근거해 주변부와 중심부에서 진행된 근대국가건설과 자유주의 정치경제레짐 팽창이 실패한 결과가 카불 함락과 우크라이나전 발발로 모습을 드러낸 셈이다.

차태서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역사의 종언”1) 혹은 보편주의적 단일세계건설의 꿈이 무너져내리는 “긴 비극의 과정의 일환”으로서 우크라이나 전쟁은 다른 한편, 우리에게 익숙한 전후 70여년 “동시대사의 종언”2) 이자 거대한 현상변경을 의미한다. 열강 간의 이익권 설정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지만, 국제연합과 같은 글로벌 거버넌스 기구나 자유주의적 규범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그리고 이와 같은 대변동의 시대에는 지정학적 단층선 혹은 파쇄지대를 따라 연쇄적인 안보 위기상황이 발생할 수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대만-한반도 같은 인화점들이 거대한 사슬로 연결되며, 주변국들의 전쟁 연루 가능성이 커지고 있는 점이 주목되어야 한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과 대만해협의 위기고조가 연동되는 것은 러시아-중국 대 서구라는 진영대결이 강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우크라이나와 대만은 공히 두 권위주의 강대국의 ‘문명’ 세력권 부활구상과 직결되어 있다는 점에서 유사점이 존재한다. 우크라이나의 독자적 주권과 국가성이 ‘유라시아주의’ 비전에서는 인정되지 않을 뿐 아니라, 그것의 수복이 소련 해체라는 국가적 수치를 극복하는 방도이듯, 대만도 ‘중국몽’이 꿈꾸는 상상계에서는 중화의 일부분이며, 백년국치를 넘어 영토완정을 이루는데 중요한 목표지점이다.
이런 맥락에서 어쩌면 푸틴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포스트-자유세계질서 프로젝트들 간 충돌시대의 시작점에 불과하고, 훨씬 더 위태로운 반자유주의적 ‘문명’ 비전의 도전은 유라시아 대륙의 반대편에서 본격화할 수 있다. 즉, 시진핑의 중국이 러시아의 길을 따라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을 위해 2020년대 어느 지점에서 대만을 강압적으로 견인하려는 사태가 발생할 수도 있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양안관계 갈등이 다시 한반도의 위기와 연결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한·미동맹과 북·중동맹이라는 제도적 사슬로 두 지역의 긴장이 연계되는 조건이 우리에게는 악몽 같은 상황을 연출할 수 있다. 대만에서의 비상사태 발생이 주한미군 개입과 그에 대한 중국의 대응으로 이어져 한국을 부수적 희생자로 만들 수도 있고, 워싱턴의 관심과 에너지가 대만해협에 집중된 상황이 평양에 모종의 전략적 호기로 포착될 가능성도 존재하는 등, 우리가 원치 않는 방식의 다양한 ‘연루’ 시나리오가 상상 가능하다.
이러한 격동기에 우리는 ‘각주구검(刻舟求劍)’의 고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명·청 교체기나 구한말에 비유할 만한 근본적인 시대변화가 현 역사국면에서 발생하고 있음을 인지한다면, 그간 당연시되었던 한국외교의 정책 패러다임이 더 이상 현실적 해법이 되지 못할 수 있음을 깨닫고 그 가정 전반을 재고하여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건국 이후 사실상 전 기간 동안 대한민국은 미국의 압도적 현존과 패권질서를 디폴트로 삼아 외교정책을 구성해 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그러한 기본조건이 거의 사라진 환경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된 국가전략을 생산해내야만 하는 산고의 시간이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다.
“역사의 종언”1) https://www.jstor.org/stable/24027184
“동시대사의 종언”2) https://www.project-syndicate.org/commentary/major-and-minor-crises-signal-end-of-pax-americana-by-joschka-fischer-2022-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