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경제대국, G7 멤버, 세계 최대 채권국, 아시아 최다의 노벨상 수상국 등 화려한 경력의 일본을 한국인들은 우습게 본다. 세계적 한류 바람으로 일본 대중문화는 그저 ‘오타쿠’ 수준에 머물러 있으며, 도장과 팩스 사용을 문화지체 현상으로 본다. ‘혼네’(속마음)와 ‘다테마에’(겉마음)의 이중성에 더없이 예민하다. 그렇다고 설사 일본이 나락으로 떨어져도 이사 갈 수는 없다. 하루 왕복비행기도 수십편에 달한다. 불온한 이웃 일본의 1차적 책임은 식민강권통치와 전쟁에 대한 불철저한 반성에 있다.
패망 후 일본의 파시즘 체제를 ‘무책임의 원칙’으로 정의 내린 사람은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다. <현대 정치의 사상과 행동>에서 이를, 신체(神體)를 모신 가마·관리·무법자(혹은 낭인)의 세 층위가 서로 물고 물리는 관계로 보았다. 일왕의 절대적 권위를 옹호하며 실권을 휘두른 문무(文武) 관리들은 권력의 정통성에 기반해 권력을 행사하지만 무법자에 의해 휘둘린 상황이 되었다고 한다. 이러한 정신구조는 이후에도 일본인들의 전쟁에 대한 책임의식을 무디게 만들었다.
전쟁범죄에 대한 도쿄 재판에서 A급 전범의 죄목은 평화에 반한 죄였다. 통례의 전쟁범죄인 B급 범죄, 비인도적 죄인 C급 범죄에 비해 전쟁을 일으키고 지휘한 자들에게 책임을 추궁한 것이다. 그러나 일왕은 무솔리니나 히틀러와 같은 최후가 아닌 ‘상징천황’이라는 이름으로 살아남았다. 반공 노선을 강화하고, 중·러에 대항하는 군사기지화를 용이하게 하도록 미국은 일왕의 전쟁 책임을 면죄해주었다. ‘제국헌법’에 명시된 무소불위의 대권을 쥔 일왕의 생존은 일본 국민들에게 양심의 가책을 벗는 심리적 기제가 되었다. 많은 연구들이 증언하듯, 군부 인사에 관여하고, 전황 보고를 받고 지시하며, 심지어 종전선언도 ‘천황제’ 유지를 위해서였다. A급 전범의 사면으로 정치계는 제국의 꿈을 연장하게 되었다.
식민지와 전쟁 책임의 면죄에 대한 분수령은 1951년 미국이 주도한 샌프란시스코 강화조약이다. 2007년 4월27일 중국인 강제동원과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일본 최고재판소 판결은 이 조약이 “개인의 청구권을 포함, 전쟁 수행 중 발생한 모든 개인의 청구권을 상호 포기한다는 전제”로 체결되었다고 했다. 그리고 이 조약 체제는 “일본국과 연합국 48개국 간의 전쟁 상태를 최종적으로 종료시키고, 미래를 향한 공고한 우호관계를 구축한다는 강화조약의 목적 달성을 위해 규정된 것”에서 찾는다. 애초에 식민주의 관점을 유지한 이 조약에, 피해자는 안중에도 없었다. 따라서 독일처럼 스스로 전쟁범죄를 재판하거나 ‘기억·책임·미래 재단’을 설립해 홀로코스트 범죄자를 끝까지 단죄하고, 지금까지 약 100조원의 배상기금으로 피해자들을 돕는 일이 일본에서는 발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전후에 비양심적인 일본인들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장편만화 <맨발의 겐>에서 군국주의와 그 정점인 일왕을 비판·고발한 나카자와 게이지, 목숨을 걸고 전쟁에 일왕 책임이 있다고 공개 발언한 모토지마 히토시 나가사키 시장, 일본군 위안부에 군이 관여했음을 증명한 역사학자 요시미 요시아키, 민간 소법정을 열어 전쟁범죄를 단죄한 시민들, 참회와 사죄를 고백한 종교계 등 보편적 인류애의 숨결이 꺼진 것은 아니다.
일본에 과거사 청산 문제를 본격적으로 제기할 수 있었던 것은 한국 민주화의 힘이다. 반공 노선의 허구와 군사독재를 무너뜨린 주체적 시민이 왜곡된 역사에 질문을 던졌다. 쇼와(昭和) 체제의 종식과 냉전 해체를 목격한 일본 시민들 또한 자신의 삶을 질식시킨 근대국가의 실패를 직시했다. 그럼에도 일본에선 자학사관을 철폐하자는 자유주의 사관과 일본회의의 이념인 신민족주의가 대두되었다. 국민국가 체제의 지속, 교육현장의 국수주의 회귀, 미국 패권에 승차한 정치권의 우경화가 이를 지탱한다. 이로써 일본은 전쟁의 가해자에서 피해자로 둔갑하고 있다.
3·1절 기념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이 “일본은 과거 군국주의 침략자에서 우리와 보편적 가치를 공유하고 안보와 경제, 그리고 글로벌 어젠다에서 협력하는 파트너”가 되었다고 한 말은 피해자가 최후의 면죄부를 준 것과 다름없다. 이웃 국가들을 착취하고, 인간 존엄성을 파괴한 야만적 과거의 기억을 지우고자 하는 일본은 과연 정의와 평화의 인류 보편적 가치를 공유할 만큼 성숙했다고 말할 수 있을까. 독일의 과거사 청산 과정을 아직도 학습 중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