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으면서도 책 읽던 소녀가 일궈낸 중고서점
마을 지키고 문화를 만들어 내는 ‘철학’ 실천
“배다리의 역사성을 담아내는 일을 해야”
지난 10일 인천 동구 배다리 아벨서점 앞에서 곽현숙 대표가 경향신문과 인터뷰를 하고 있다.|한대광 기자
1973년 11월 4일. 월부책 외판원으로 일하던 그는 인천 동구 배다리 인근 교회 앞에 헌책방을 차렸다. 걸으면서도 늘 책을 보고 다녔던 그였다. 철학책을 특히 즐겼다. 중고서점 문을 연 것도 책에 대한 열정 때문이었다. “세상일을 더 알고 싶었다”며 책방을 접고 2년간 집 짓는 일부터 공장 노동자, 식모살이 등도 해봤다. 그러나 “지위를 불문하고 누구나 외로움이 있다는 걸 깨달았고 (그 외로움을) 책으로 풀 수 있다는 확신을 하게 됐다”며 다시 책방으로 돌아왔다.
중고책방과의 인연은 이렇게 50년이 흘렀다. 자신이 태어난 배다리 동네에서 ‘아벨서점’ 간판을 지키고 있는 곽현숙 대표(73)의 이야기다.
인천 동구 배다리 아벨서점 안에는 오래 전 배다리 전경과 아벨서점 안에서 책을 정리하는 모습 등을 담은 사진이 걸려 있다.| 한대광 기자
곽 대표는 지난 10일 경향신문과 만나 “내 인생을 여기에 걸기를 잘한 것 같다”며 중고서점을 예찬했다. 자신의 지적 호기심을 해소하는 것은 물론 누군가는 진정 소중하고 보물 같은 책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벨서점이기 때문이다.
책방을 처음 열었을 때 그는 좋은 책을 구하기 위해 고물상을 순회하며 발품을 팔았다.
“중고서점 한곳이 온전하게 운영되기 위해서는 고물상에서부터 중고서적 도매상 등 30여명이 함께 움직이는 생태계를 형성해야 해요.”
책을 사고 살펴보고 손질하고 다시 포장하고 진열하는 생활을 반복하면서 그는 서가를 가득 채우고 있는 책이 몇 번째 칸에 있는지를 다 꿰고 있다.
인천 동구 배다리에 위치한 아벨서점에서 지난 10일 곽현숙 대표(오른쪽)가 이현식 인천문화재단 대외협력실장이 구매한 책을 전달하고 있다.|한대광 기자
곽 대표는 ‘제일 좋았던 기억’을 묻자 “마음이 외로운 사람이 찾아와 온종일 책방에 있다가 책 몇권을 사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이 공간과 책들이 그 분에게 조금이라도 위로가 됐을 것이라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손님들이 구하기 어려웠던 책을 찾고 좋아하는 모습을 볼 때도 보람을 느낀다. 그가 인터넷 판매를 하지 않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책을 찾아오는 사람들에게 책방을 열어주는 게 자신의 업이라는 것이다. 즐비했던 중고서점 40여개는 대부분 새 책방을 내기 위해 배다리를 빠져나갔지만 아벨서점은 50년째 이 곳을 지켜왔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가 별관인 아벨전시관에 전시된 책들을 설명하고 있다.|한대광 기자
그의 삶은 ‘책방지기’만이 아니다. 권 대표는 마을을 지키고 문화를 만들어 내고 함께하는 이들의 삶을 풍성하게 가꿔주는 ‘철학’을 실천하고 있다.
인천시가 2006년 배다리를 관통하는 산업도로 건설 계획을 발표했다. 지역사회에서 우려가 제기됐다. 곽 대표는 “개발을 명분으로 동네를 두 동강 내고 배다리가 사라지게 되는 현실을 가만히 지켜볼 수는 없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한달음에 시청으로 갔다. 난생처음 만든 플래카드를 들고 시청 앞에서 ‘배다리 관통 도로 건설 반대’ 1인 시위를 벌였다.
2007년에는 개인재산을 털어 다락방과 시집 전시실, 문화·예술 서적 전시실을 갖춘 ‘아벨 전시관’을 열었다. 이 곳에서는 지역주민과 문인들이 함께 참여하는 시낭송회가 꾸준히 열리고 있다. 한때 배다리에서 중고서점을 운영했던 고 박경리 작가를 기리는 전시 등 다양한 전시회도 진행된다.
곽 대표는 “배다리가 낙후됐다고들 하는데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이 곳은 일제강점기 당시 3.1 만세운동이 인천에서 가장 먼저 시작될 정도로 민족정신과 시민정신을 갖고 계신 분들이 많이 살았던 곳“이라며 ”어느 집 하나 똑같이 생긴 구조물이 없을 정도로 인천의 역사와 시민들의 삶이 함축된 곳”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지금을 사는 이들은 그런 역사성과 의미를 담아내는 일을 해야 하는 동네”라고도 했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가 지난 10일 아벨전시관에서 진행 중인 <개항과 양관역정> 책자 전시물을 설명하고 있다.|한대광 기자
▶ 인천 배다리 헌책방 골목의 어제와 오늘
인천 동구 배다리 아벨서점 바로 옆에 있는 문화공간인 ‘아벨 전시관’ 2층에는 고 박경리 작가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박경리 작가는 1948~49년 이 일대에 거주하며 헌책방을 운영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개항장인 제물포항과 인접한 축현초등학교와 인천여고 골목에는 8·15광복 직후에는 일본인들이 버리고 간 책, 한국전쟁 당시에는 피난민들이 두고 간 책 등이 이동식 손수레에서 판매됐다. 이후 헌책방 거리는 인접한 배다리로 옮겨졌다.
배다리는 작은 배들이 정박하면서 많은 물자가 교류되던 시장이었다. 이희환 박사 등이 2009년 발행한 <인천 배다리-시간, 장소, 사람들>에 따르면 배다리 헌책방 골목은 한국전쟁 이후 본격적으로 형성됐다. 이 일대에서 가장 오래된 집현전은 1953년부터 책방을 시작했다
배다리는 이후 인천의 대표적인 헌책방 골목으로 자리를 잡았다. 1970년대에는 40여개가 넘는 중고서점들이 번성했다. 학생들은 물론 시민들의 발길도 끊이질 않았다. 이 곳은 서울 청계천, 부산 보수동과 함께 전국 3대 헌책방 거리로 명성을 얻기도 했다.
곽현숙 아벨서점 대표는 “인천 곳곳이 개발되고 전철이 생기면서 배다리에서 책을 구하려는 발길이 분산되고 배다리에 있던 서점 주인들은 점차 학교 앞에서 새 책을 팔기 위해 흩어졌다”고 말했다.
배다리 헌책방 골목에는 아벨서점을 비롯해 대창서림, 집현전, 한미서점, 삼성서림 등 책방 5곳만이 명맥을 유지하기도 했다.
그러나 배다리의 역사와 문화를 살려야 한다는 움직임이 가시화되면서 다양한 문화공간과 함께 서점들도 늘기 시작했다. 배다리에는 현재 8개의 서점이 운영 중이다.
곽현숙 대표는 “배다리 일대는 1970년대까지도 목공, 양복, 악기 등 각종 수공업체가 특화된 곳이었지만 도시화와 함께 이 일대 특성이 보듬어지지 못한 채 밀려나는 아픔을 겪었다”면서 “최근 배다리에 책방이 새로 문을 여는 등 많은 사람의 힘으로 성장하고 있는 만큼 더 멋진 미래를 꿈꿀 수 있는 마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