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산책

황제의 이름 때문에 생긴 절기 ‘경칩’

엄민용 기자

오늘은 겨울잠을 자던 개구리도 깜짝 놀란다는 경칩(驚蟄)이다. 하지만 경칩은 본래 개구리와 상관없는 날이다. 한자 ‘驚蟄’에서 알 수 있듯이 놀라는 것은 벌레다. ‘蟄’이 “숨다” 또는 “겨울잠을 자는 벌레”를 뜻한다.

옛사람들은 겨울이 지나고 봄비가 내리는 이 무렵에 올해의 첫 번째 천둥이 치고, 그 소리에 겨울잠에서 깬 벌레들이 땅 밖으로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원래는 ‘열 계(啓)’자를 써서 계칩(啓蟄)이라고 했다. 중국 후한시대의 역사가 반고가 지은 <한서>에도 그렇게 기록돼 있다.

그러나 경칩에 놀라는 것이 개구리인지 벌레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추운 겨울에는 보이지 않다가 따뜻한 기운을 받아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생명이라는 사실이 중요하다.

우리말에는 이런 표현이 많다. ‘얌전한 ○○○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도 그중 하나로, 여기에서 ○○○에 ‘고양이’가 들어가도 되고 ‘강아지’가 들어가도 된다. 겉으로는 얌전하고 아무것도 못할 것 같은 사람이 딴짓을 하거나 자기 실속만 차리는 경우를 비유적으로 나타낼 수 있는 대상이면 그만이다.

‘계칩’이 ‘경칩’으로 바뀐 것은 중국 전한의 6대 황제 경제(景帝) 때문이다. 그의 본명이 유계(劉啓)로, 피휘(避諱)를 위해 ‘열 계’를 ‘놀랄 경’으로 바꾼 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 피휘란 국왕·조상·성인 등이 쓰는 이름에 들어간 글자를 사용하지 않는 관습을 뜻한다.

북한 주민들이 자신의 이름에 ‘일성’이나 ‘정일’ 등을 쓰지 않는 것도 피휘의 사례다. 최근 북한에서 김정은의 딸 김주애로 인해 지금까지 ‘주애’라는 이름을 쓰던 사람들이 개명을 강요받고 있다는 소식에서 알 수 있듯이 피휘는 백성들을 불편케 한다.

이 때문에 조선의 왕실에서는 백성들이 거의 쓰지 않는 한자로 이름을 지었으며, 한 글자로 짓는 일도 많았다. 백성들의 불편을 최소화하기 위함이다. 자기 좋을 대로 이름을 짓고는 백성을 닦달하는 북한과 백성들을 위해 이름 짓기 하나도 조심한 조선왕실. 폭군과 성군의 행보는 늘 사소한 것에서 차이를 보인다.


Today`s HOT
회담 위해 인도를 방문한 카타르 국왕 미국 프로야구 마이애미 말린스 팀의 훈련 과나바라 만 해변 환경오염으로 자원봉사자들이 힘을 합치다. 폭풍과 홍수로 피해를 입은 미국, 이를 극복하려는 모습
창립 50주년을 맞이한 피나왈라 코끼리 고아원의 현장 평년보다 낮은 기온 맞이한 미국 시카고의 모습
리알토 다리 아래에서 모두가 즐기는 카니발 강풍과 많은 눈이 빚어낸 캐나다 비행기 추락 사고..
꽃 피운 계절이 온 스페인의 여유로운 일상 해변에서 여유를 만끽하는 프랑스 시민들 오스트리아의 한 마을에서 일어난 공격으로 현장은 추모의 분위기 혹독한 겨울 폭풍, 미국을 강타한 후의 상황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