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원 참사에서 형제자매를 잃은 유가족 10인의 공동호소문 영상을 우연히 접했다. 당황스럽게도 그 호소문은 소로의 시민불복종에 실린 문장으로 시작되었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먼저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회운동에서나 나올 법한 말을 사고에 희생당한 유가족의 입에서 들으니 놀라웠다. 어쩌다 유가족이 불복종을 말하게 되었을까? 유가족의 의도는 일방적으로 애도와 망각을 강요하는 정부에 맞서겠다는 것이겠지만 내 느낌으로는 더 깊은 부분을 건드렸다.
누가 시민사회를 파국으로 몰아가나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공동호소문은 사고의 책임을 대통령과 행정안전부 장관, 서울시장에게 일단 묻고 있다. 그렇지만 더 이상 국민을 대리하지도, 국민의 역할을 하지도 않는 공무원들에게도 책임을 묻고 있다. 진실과 정의에 자신을 바칠 정치인이나 공무원이 등장하리란 기대는 호소문에서 보이지 않는다.
사실 세월호 참사 때 이미 국가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이 던져졌다. 한국의 정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당성 회복이 아니라 국가의 기반인 시민사회의 파괴에서 찾은 듯하다. 정확한 진상도, 분명한 대안도 없는 상태에서 정치의 몫이어야 할 사안들이 사법부로 넘어가거나 시민사회로 넘어가 여론재판정에 세워졌다.
‘아니면 말고’ 식의 온갖 의혹들이 여론을 부추겼고, 토론하며 잠정적인 대안을 찾아야 할 사안들은 지지자들에 대한 호소로 대체되었다. 그러면서 시민 간의 불신도 점점 더 깊어지며 사회가 해체되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윤석열 정부는 노동조합과 시민단체들을 직접 공격하고 있다. 노조에 들어간 지원금이 부정이라면서 그보다 수천배가 넘는 사학재단에 대한 지원금은 문제 삼지 않는다. 시민단체에 대한 지원금이 특혜라면서 그보다 훨씬 많은 관변단체의 지원금엔 침묵한다. 정확하지 않은 정보들이 사회의 결사체들을 불신의 먹잇감으로 만든다. 기본이라 할 청소년인권, 민주시민교육, 사회적경제조차도 정쟁의 도구로 이용된다. 의제는 단순한 의견을 밝히는 것조차 누군가에 대한 지지로 해석될까 두렵다.
이런 경향이 지금 정부만의 탓은 아니다. 그동안 한국정치는 비정규직 차별, 성차별, 학력차별, 자산격차처럼 사회를 균열시키는 문제들에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으면서 지지율을 끌어올리려는 전략으로 활용해 왔다. 문제를 드러내고 함께 해결책을 모색하기는커녕 상대방의 탓이라며 비난만 했다. 양당제 정치구조는 서로를 비난할수록 지지층이 결집되는 괴상한 정치를 강화시켰다. 의혹과 비난이 권력을 움직이니 압수수색부터 시작하는 정부가 들어선 것은 그런 흐름의 정점이라 하겠다.
그 결과 사회의 양극화가 아니라 사회 없는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계층은 이미 심하게 쪼개져서 하나의 형태를 갖추지 못한다. 어떤 형태의 결사체이건 불신을 받는 곳에서는 공동으로 만든 안전장치가 파괴되고 양극화의 결과는 온전히 개인의 몫이 된다. 개인의 분노와 불안은 서로 충돌하며 증폭된다.
사적인 복수에 매혹된 사회
무능한 정치와 적대에 감염된 시민들 속에서 무책임한 기업들은 생명을 갈아 넣어 이윤을 챙기고 있다. 규제 완화와 민영화라는 명분을 내세운 대기업과 투기자본들이 공공부문을 잠식하고 있다. 이에 따른 불만은 누적되고 있지만 시민이 함께 움직일 기반도, 공동의 목표도 없다. 권력의 정당성이 사라진 세상에서 드라마와 영화는 사적인 복수를 멋있게 묘사하기 시작했고, 시민들은 치밀한 복수에 환호한다. 하지만 그 복수조차 유능한 사람들의 몫이라는 비극은 반복된다. 복수는 관람할 수 있을 뿐 허용되진 않는다.
더구나 기후위기, 불평등, 생명과 안전 등 정치가 다뤄야 할 중요한 주제들은 복수로 해결될 수 없다. 상처 입은 사람들은 불가능한 복수의 환상에 빠져 모진 현실을 견디고 힘을 가진 소수는 장벽을 세워 자신들을 보호하는 곳, 사회가 해체되는 한국의 모습이다.
그렇다고 이대로 파국을 기다릴 수만은 없다. 이미 분립과 견제의 취지를 잃어버린 입법/행정/사법의 삼권을 근본적으로 재편하겠다는 정치세력의 등장을 당장 기대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기득권을 내려놓고 정부의 무능과 부패를 하나씩 드러내고 해결하며 신뢰를 쌓아가고 사회를 복원하는 정치의 등장을 기다리고 싶다. 그 외에 어떤 대안이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