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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서사 아카이브

“이러다 정부 부처가 모두 ‘성평등 걸림돌’ 명단에 오르는 거 아닌가 모르겠습니다.”

지난 4일 서울 중구 서울시청 앞 광장에서 열린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서 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이 ‘성평등 걸림돌’로 지목됐다. 여가부 장관이 ‘성평등 걸림돌’로 지목된 것은 2001년 여성부(현 여가부) 출범 후 처음이다. ‘성평등 걸림돌’은 여성 권익을 저해한 개인 또는 단체에 주는 것으로, 한국여성단체연합이 1997년 제정했다.

세계여성의날을 나흘 앞둔 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회 슬로건인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를 외치고 있다.

세계여성의날을 나흘 앞둔 4일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대회 슬로건인 “성평등을 향해 전진하라”를 외치고 있다.

김 장관의 이름이 호명되자 참가자들은 야유를 쏟아냈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김 장관은 성평등 가치를 확산하고 구조적 성차별 해소를 위해 힘써야 할 책임부처의 장관임에도, (여가부 폐지) 정부조직 개편에 대해 ‘권한 강화’라며 사실을 왜곡했다”며 “인하대 성폭력 사건, 신당역 여성노동자 스토킹 살해사건과 같은 여성폭력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며 여성안전을 위한 정부의 역할과 책임이 요구되는 상황에서도, ‘여성폭력이 아니다’며 성차별 구조에 대한 무지와 무책임을 드러냈다”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플랫]김현숙 여성가족부 장관의 NCND

📌[플랫]김현숙 여가부 장관 “신당역 사건은 여성혐오 범죄 아니다”

📌[플랫]한동훈과 통화 후 뒤집어진 ‘비동의강간죄’, 김현숙 국회서 ‘진땀’

김 장관 외에도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 교육부·식품의약품안전처·서울교통공사와 인천지법 형사9단독 재판부, 포스코와 동남원새마을금고가 성평등 걸림돌로 지목됐다. 교육부는 2022 개정 교육 과정에서 성소수자·성평등·재생산 등의 표현을 삭제했고, 식약처는 유산유도제 도입 허가를 미루고 있다. 권 의원은 여가부 사업인 버터나이프크루를 중단시켰고 여가부 폐지를 담은 정부조직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동남원새마을금고는 ‘밥 짓기’ 등 여성직원을 대상으로 한 직장 내 괴롭힘이 벌어진 곳이고, 포스코는 직장 내 성희롱을 은폐·축소했다는 이유로 성평등 걸림돌에 포함됐다.

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를 적은 포스트잇을 판넬에 부착해놓았다. 윤기은 기자

4일 서울 중구 서울광장에서 열린 제38회 한국여성대회에서 참가자들이 여성가족부 폐지에 반대하는 이유를 적은 포스트잇을 판넬에 부착해놓았다. 윤기은 기자

‘올해의 여성운동상’은 전국화학섬유식품산업노동조합 파리바게뜨지회에 돌아갔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소수노조라는 불리한 여건에서도 SPC를 협상테이블로 끌어내고 단체협약에 준하는 합의를 이뤘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평가했다.

📌[플랫]파리바게뜨 투쟁을 왜 ‘여성의 문제’로 봐야할까

차별금지법 제정 운동에 앞장서온 고 임보라 목사는 특별상을 받았다. ‘성평등 디딤돌’ 상은 미군 기지촌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책임 인정 판결을 끌어낸 122인 원고와 대리인단, 캐디 특수고용노동자의 노동권을 확장한 전국여성노동조합 상록CC분회, 해군상관에 의한 성소수자 여군 성폭력 사건 공동대책위원회 변호인단, 청주페미니스트네트워크 ‘걔네’가 받았다.

📌[플랫]‘성소수자 벗’ 임보라 목사 별세

대회에서는 여가부 폐지 등 윤석열 정부의 여성·젠더 정책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분출했다. 대회는 3월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열리는 행사로, 윤석열 정부 출범 후에 열린 건 처음이다.

한국여성단체연합은 “국가 성평등 정책 전담부처 여가부의 존재 이유를 부정하는 대통령의 당선 이후 다양한 영역에서 성평등·민주주의·평화·인권 가치의 퇴행을 목격하고 있다”며 “이 모든 구조적 문제를 해결해야 할 책무를 가진 국가는 헌법적 가치인 성평등을 실현하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밝혔다.

시민들은 정부 정책이 여성 인권을 후퇴시킬 것이라는 위기의식 때문에 광장에 나왔다고 했다. 대학생 임채미씨(24)는 “이번 정부가 여가부 폐지를 공약으로 내세우며 표 가르기 도구로 쓰는 게 화가 났고, 여성인권에 위기 의식을 느껴 여성대회에 처음으로 와봤다”며 “여가부가 없어지면 여성 차별을 완화하기 위한 업무들이 적어질 것”이라고 했다.

여가부 산하 성폭력상담소에서 근무하는 박모씨(27)는 “여가부가 없어지면 성폭력 상담 업무는 복지부로 흡수될 수 있지만, 인권보다 복지 차원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게 될 경우 성폭력 상담 서비스가 유지될 수 있을지 의문”이라고 했다.

대회에서는 윤석열 대통령의 3·1절 기념사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일본을 “협력 파트너”로 규정하면서 일본군 위안부, 근로정신대 강제동원 배상 문제 등 여성 인권과 관련한 문제는 언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1992년 제1차 수요집회를 소집했다는 최정순씨(68)는 “3·1절 기념사는 역사 전면으로 나서지 못했던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애쓰고 용기 낸 사람들을 무시하는 행위”라며 “성평등 가치를 훼손하는 정권은 이번이 처음”이라고 말했다.

대회에는 약 1만명(주최 측 추산)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보라색 의상을 입었는데, 보라색은 1900년대 참정권 투쟁을 한 영국 여성사회정치연합의 상징색이자 ‘정의와 존엄’을 의미한다. 참가자들은 ‘서울광장→종각역→을지로입구역→서울광장’ 경로로 행진했다.

▼ 윤기은 기자 energyeun@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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