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중국 충칭에서 2016년 5월 열린 ‘2016 충칭 한류상품박람회’에서 관람객들이 한국 음식을 맛보고 있다. 경향신문 자료사진
1840년 아편전쟁 이후 서구열강의 제품들이 중국 시장으로 쏟아져 들어갔다. 1847년 상하이에서는 외국 상품을 수입해 판매하는 양행(洋行)들이 영국, 프랑스, 러시아, 일본 등 24개국과 거래하고 있었다. 1890년대 들어선 상하이의 거의 모든 백화점이 양화(洋貨·외국 상품)를 판매했고, 1917년 상하이 난징루에 들어선 백화점들은 외국 상품만을 취급했다. 1890년대부터 진출한 일본 자본은 고무신 등 소비품은 물론 기계, 방직업 등으로도 진출하며 중국 경제를 잠식해갔다.
1905년 미국 정부가 재미 중국 노동자들을 차별대우한다는 보도에 중국인들이 격분하면서 미국 상품 불매운동이 벌어졌다. 중국 사업가들은 공동 투자해 한커우에 밀가루 공장을 세웠다. 중국의 국산품 애용운동 궈차오(國潮)의 원조다. 중국이 1919년 파리강화회의에서 일본으로부터 산둥지역의 이권을 되찾아오지 못하자 대학생들이 5·4 운동을 일으켰는데, 이때도 일본 상품 불매와 국산품 소비운동이 동시에 전개됐다. 중국인들의 국산품 소비운동은 1931년 만주사변 등 정치격변 때마다 되풀이됐다.
2018년 미·중 무역전쟁을 전후로 궈차오가 본격화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20세기의 저항적 소비운동과 양상이 다르다. 고품질과 창의적 디자인, 온라인 채널 발달이 추동하는 자발적 소비붐이다. 중국 제품의 질이 고급화한 데다 전통문화적 요소가 상품과 결합하면서 매력도를 높인 덕분이다. 세계적인 체조선수 리닝이 1990년 설립한 스포츠웨어 브랜드 ‘중국리닝’이 빨간 바탕에 중국 번체자를 사용한 로고로 전통문화를 구현한 것이 대표적이다. ‘중국리닝’은 급속한 경제성장으로 자긍심이 커진 중국 MZ세대들이 열광하는 브랜드로 성장했다.
한국 제품들이 궈차오 붐에 밀려 고전하고 있다. 한국무역협회가 지난해 말부터 두 달간 중국 소비자 1000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 최근 5년간 한국 상품 구매 경험이 있는 소비자가 43.1%로 2020년(78.7%)보다 35.6%포인트나 줄었다. 코로나를 벗어던진 중국의 ‘리오프닝(reopening)’이 한국 기업에 단비가 될 것이라는 예상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 궈차오를 뛰어넘을 창의적인 마케팅 전략이 절실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