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독서진흥을 위해 각계 전문가 11인을 모아 야심차게 ‘역사를 바꾼 책’ 100권을 선정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역사를 바꾼 책’이라니, 역사학자로서 귀가 솔깃했다. 그런데 선정 위원 명단을 보고서는 일차로 갸웃하게 됐다. ‘역사를 바꾼’이라는 타이틀을 달았는데 정작 선정 위원에는 역사 전공자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이다. 도서 목록을 보자 더욱 당황스러웠다. 이 책들이 ‘역사를 바꾼’ 책이라고?
장지연 대전대 H-LAC대학 역사문화학전공 교수
우선 여기서 말하는 역사가 누구의, 혹은 무엇의 역사인지 잘 이해가 가지 않았다. 세계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한국사를 의미하는 것인지, 누구의 역사인지 말이다. 이건 어떻게 합의로 해결한다 쳐도 ‘바꾼’이라는 표현은 합의가 쉽지 않다. 역사학자들은 이 ‘바꾼’의 정의에 민감하다. 연속적인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이 바뀌었는지, 무엇이 바뀌지 않았는지, 언제를 질적 변화가 일어난 시기로 볼 것인지 등을 놓고 고민하는 게 직업이기 때문이다. 고려에서 조선으로의 왕조 교체가 대단한 변화였다, 아니다, 신라에서 고려의 변화가 더 크다, 그것도 아니다, 왕조 교체 정도 가지고 변화 얘기 하지 말라 같은 논쟁이 대표적이다.
여기에 ‘책’까지 결합하면 문제는 더 복잡해진다. 고려가 망하는 데 일조한 <도선비기> 같은 예언서는 역사를 바꾸는 데 기여했으나 지금 남아 있지도 않고, 있다 한들 이걸 지금 우리 모두가 읽을 필요도 없다. 더 근본적인 문제는 책이 정말 역사를 바꿀 수 있을 만큼 강력한 힘을 발휘했다고 하기엔 좀 주저하게 된다는 것이다. 인류는 대부분의 세월을 문자 없이 살았고, 문자가 탄생한 후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비교적 최근까지 문맹이었다. 아직도 어떤 지역은 여전히 문맹률이 높고 공교육도 자리잡지 않았다. 이런 배경을 놓고 보면 책이 역사를 바꿀 정도의 힘을 가지게 된 것은 사실 지난 몇백년 정도에 불과하다고도 볼 수 있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생각을 하다, 주최 측의 선정 기준을 보자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역시 기준이 있었다. ‘학제적 의미에서 역사적으로 큰 변화의 계기를 제공한 작품이나, 사조에서 최초라 할 만한 저작물 또는 대표적 인물의 주저’, 또 ‘해당 학문 분야’뿐만 아니라 ‘타 학문 분야에도 영향을 미치거나 오늘날에도 그 가치와 의미를 인정받는 책’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아, 결국 여기에서 말하는 ‘역사를 바꾼’은 학문에서의 영향력을 가지고 붙인 것이구나. 나 혼자 괜히 과잉 해석을 했네 하다가 다시금 새로운 의문을 품게 되었다. 그럼, 왜 역사학의 여러 분야, 새로운 사조에 해당하는 책은 들어가 있지 않은가. 그저 서양 역사 서술의 시초 하나, 한문 문화권 역사 서술의 시초 하나, 이슬람 문화권 역사 서술의 시초 하나 이렇게 던져놓다니. 아, 이건 좀 너무 게으르다. 근대 역사학의 시조라 불리는 랑케가 무덤에서 울게 생겼다. 여기에 20세기 역사학을 이끈 기념비적 저작들 - 아래로부터의 역사, 문화사, 아날학파, 개념사 등등은 어디 갔는가?
무엇보다 여성사를 학제적으로 정립한 거다 러너가 빠진 것이 아쉽다. 여성주의 운동도 이제는 제4의 물결이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오고, 보수적인 디즈니조차 주체적인 여성 캐릭터를 그려내며 시류에 영합하는 이 시대에 말이다. ‘여성의 역사는 가능한가?’라는 질문에서 ‘여성 없이 역사를 서술할 수 없다’는 선언에 이르기까지 그렇게 많은 이들이 노력했건만, 2023년에 출범한 프로젝트의 선정 위원에 여성은 한 명도 없고 선정된 도서에 여성 저자의 책이 단 4권밖에 없다니 몹시 당혹스럽다. 21세기도 사반세기 가까이 흐른 지금, 그것도 3월8일 세계 여성의날 즈음에 세상의 절반은 여자라는 명제를 다시금 곱씹고 있노라니, 더욱 씁쓸하다. 반지성주의가 팽배한 지금, 책과 지성의 문화를 되살리려는 이렇게 좋은 기획이 이 정도라는 게 가슴 아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