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다시 1300원을 넘어서면서 환율 불안이 재현되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다행히 지난해 1400원을 돌파하던 기세와는 달리 1300원대 초반에서 추가 상승이 저지되고 있다. 하지만 올해 초만 해도 환율이 빠르게 떨어지면서 가졌던, 1200원선도 무너뜨릴지 모른다는 기대와는 천양지차다. 중소 개방경제국인 우리에게 환율 불안은 숙명인 걸까?

정중호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
일단 시장의 일반적 평가는 과거 두 차례의 금융위기를 겪으며 국내 외환건전성이 향상된 덕분에 환율 불안이 시스템 위기로 확산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지난해 환율 폭등도 미국 연방준비제도(연준)를 위시해 세계적 차원의 통화긴축 공세로 인한 글로벌 유동성 경색에 대한 우려가 확산된 영향일 뿐, 과거 외환위기나 금융위기와는 차원이 다르다는 게 중론이다.
또 지금의 환율 급반등 역시 그동안 단기간에 환율이 급락한 가운데 연준의 통화정책 행보나 미·중 갈등 심화 속 중국 경기 향방에 대한 불확실성 등이 재조명된 데 따른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해석된다. 달러 강세나 다른 통화의 약세에 비해 원화 약세가 좀 더 격렬했던 것도 그만큼 원화 반등폭이 컸던 데다 민감도가 높은 차이나 리스크가 반영된 결과다.
하지만 환율이 여느 금융시장 가격변수들과 다르게 이른바 ‘매크로 변수’의 대접을 받는 만큼, 지금과 같은 환율 급변동은 우리 경제에도 상당한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그저 수출입 실적 차원만이 아니라 국내 금융시장의 전반적인 자금조달 운용 여건은 물론 물가를 비롯하여 가계 구매력이나 국민소득 수준에 이르기까지 환율 영향이 크기 때문이다.
따라서 환율은 시장의 힘에만 맡길 일이 아니고 정부의 능동적인 관리가 불가피한 영역이다. 하지만 인위적인 개입은 오히려 외환보유액의 탕진이나 거시건전성의 악화 등과 같은 부작용이 클 때가 많다. 변동환율제하의 환율도 시장에서 결정되는 가격변수인 만큼, 환율 관리 역시 외환시장의 수요와 공급 여건에 기반을 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국내 외환 수급 여건에 점차 관심이 커지고 있다. 사실 작년 초까지만 해도 우리나라는 막대한 경상수지 흑자를 누려 왔다. 그럼에도 원·달러 환율은 2010년대 이후 1100원대를 중심으로 흐름을 이어갔다. 아무래도 세계화, 선진화 추세를 반영하여 해외 직접투자나 증권투자가 외국인 자금 유입 이상으로 급증하면서 달러 수요를 부추긴 탓이다.
개방경제의 거시경제학에서 경상수지 흑자는 순자본유출을 의미한다. 주로 금융계정상의 흑자로 표현되는 순자본유출은 우리나라의 해외순투자(직접·증권투자 외에 대출이나 달러 보유 등도 포함)에서 외국인 투자자의 국내순투자(차입 등 포함)를 뺀 값으로, 그만큼 우리의 대외순금융자산이 늘어난다는 말이다.
실제로 2010년대 이후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 누적에 힘입어 우리나라도 2014년부터 대외순금융자산국으로 변모했다. 과거의 만성적인 자본수입국에서 벗어나 2022년 말 현재 7000억달러가 넘는 자본수출국으로 탈바꿈했다.
이처럼 늘어난 대외순금융자산은 외환보유액 이상으로 대외 충격에 맞서는 안전판이 된다. 다만 자산과 부채의 비대칭성을 감안하면, 다급할 때는 자산 회수가 어렵고 부채 회수 압력이 커지면 외환 수급에 차질이 초래되곤 한다.
또 이론상으로는 경상 흑자와 순자본유출이 일치해 외환 수급도 균형을 맞추지만, 실물 차원의 달러 종자돈인 경상 흑자의 회수는 지체되지만 달러 조달이 필요한 해외투자 등 순자본유출이 늘어나면서 외환 수급을 압박할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이제 경상 흑자 자체가 대폭 감소하면서 우려가 크다. 그 이면에 우리나라의 해외투자 등 자본순유출이 줄어들어 회계상 균형은 맞지만, 당장에는 국내 투자 유인이 저하된 상황에서 외환 수급의 실질적 불균형은 확대될 공산이 크다. 지금 겪고 있는 2차 환율 불안의 또 다른 그림자인 셈이다. 환율 불안을 그저 취약한 대외여건 탓으로 돌릴 게 아니라, 국내 외환 수급을 안정시킬 방도를 고민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