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 69시간’ 세계적으로 유례 없고
주요국, 1일 최대 노동시간 제한 둬
개편안, 장시간 노동 보편화 ‘우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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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장노동시간 관리단위를 월·분기·반기·연 등으로 유연화해 ‘주 69시간’ 노동을 가능케 한 정부의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이 세계적으로도 유례가 없는 제도라는 지적이 나왔다. 주요국 대부분은 ‘1일’ 또는 ‘1주’단위로 연장노동시간을 엄격히 제한했다. 허용되는 연장노동시간도 한국보다 훨씬 짧았다.
정부는 ‘글로벌 스탠더드’에 맞추기 위해 제도를 개편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노동시간을 줄여가는 세계적 흐름과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탄력근무제’처럼 1일 노동시간 제한 없는 장시간 노동을 보편화할 수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9일 강은미 정의당 의원실이 지난해 7월 국회입법조사처에서 받은 ‘해외 근로시간 제도 관련 입법조사회답’을 보면, 해외 주요국 16개국 가운데 13개국이 1일·1주 단위로 연장노동시간에 제한을 두고 있었다. 당시 강 의원실은 1일 노동시간 한도가 있는 국가들의 현황, 한도 예외 사유가 있다면 그 법적 근거, 노동시간 제도 운용 방식을 입법조사처에 질의했다.
16개국은 2016년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의 ‘근로시간법제 국제 비교’ 보고서에 나온 국가들로 독일, 프랑스, 영국, 네덜란드, 덴마크, 벨기에, 스웨덴, 오스트리아, 포르투갈, 핀란드, 미국, 캐나다, 일본, 대만, 싱가포르, 중국이다.
대부분 ‘하루 총량’ 엄격히 관리
16개국 중 9개국은 1일 연장노동시간을 규제하고 있었다. 주~월 단위로 관리단위를 확대해도 ‘1일 허용 최대 노동시간’을 정해뒀다. 독일에서는 탄력근무제를 전제로 6개월간 1일 ‘평균’ 8시간을 넘지 않는 범위에서 ‘1일 10시간’까지 노동이 가능하다. 주간으로 보면 48시간 제한이 걸린다.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대만은 1일 12시간, 벨기에는 1일 11시간(1주 50시간)의 노동시간 제한을 뒀다. 중국은 연장노동시간은 1일 1시간이지만, 특별한 사정이 있다면 “노동자의 신체 건강을 보장하는 조건”으로 1일 3시간까지 연장노동이 가능하다. 중국의 법정노동시간이 8시간인 것을 고려하면 1일 최대 11시간의 제한이 걸리는 셈이다. 연장노동시간의 총량은 1개월 36시간을 넘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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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17주 평균), 덴마크, 스웨덴, 캐나다 4개국은 주당 48시간으로 노동시간을 관리하고 있다. 한국의 현행 ‘주 52시간’보다 4시간이 짧다. 각국은 자연재해, 사고, 회사의 중대한 손해, 국방 등 매우 특수한 사례에만 노동시간 제한 예외를 뒀다.
비슷한 제도 운영하는 일본, 노동시간은 훨씬 짧아
연장노동시간 규제 단위가 1주를 넘는 국가는 일본과 핀란드, 미국 3개국이었다.
핀란드는 근로시간법에 따라 4개월 138시간, 1년 250시간의 연장노동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 지역 단위 노사협정을 맺으면 연간 80시간을 추가할 수 있는데 이때에도 ‘4개월 138시간’을 넘을 수 없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를 보면 2018년 기준 핀란드의 1인당 연간 노동시간은 1555시간, 1주 평균 약 30시간이다. 같은 해 한국의 연간 노동시간은 1993시간(1주 평균 39.4시간)이었다.

정부의 노동시간 개편안에 대해 반대하는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 앞에서 피켓을 들고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한국 정부의 개편안과 가장 비슷한 제도를 갖고있는 국가는 일본이다. 다만 허용하는 연장노동시간은 훨씬 짧다. 일본은 연장노동시간 한도를 1개월 45시간, 1년 360시간으로 관리하고 있다. 한국 정부의 이번 개편안에 담긴 연장노동시간 총량은 1개월 52시간, 1년 440시간이다. 일본은 “통상 예견할 수 없을 정도로 업무량이 급증한 경우”에만 노사 합의를 전제로 1개월 100시간(6개월 초과 불가), 1년 720시간까지 연장노동을 허용한다. 미국은 연장노동시간 규제가 아예 없다.
주요국들이 노동시간 관리단위를 ‘짧게’ 잡는 것은 ‘몰아서 일을 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특정 기간 과하게 일하면 뇌심혈관계 질병이 발병할 수 있고 사망 위험이 급격히 커진다. 한국의 과로사 산재 인정 기준은 ‘발병 전 4주간 주당 평균 64시간 노동’이다. 근무일간 11시간 휴식을 두면 ‘1주당 69시간’, 휴식을 두지 않으면 ‘1주당 64시간’으로 연장노동시간을 제한한 정부의 이번 개편안이 ‘과로 조장’이라고 비판받는 이유다.

고용노동부 ‘근로시간 제도 개편 방안’
정부가 이번 개편안에서 매우 특수한 사례들을 ‘글로벌 스탠더드’로 제시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부는 독일이 “6개월 평균 1주 48시간 내 연장노동”을 한다고 했지만, 이는 탄력근무제가 전제된 특수한 사례다. 입법조사처는 “독일은 다양한 형태의 별도 규율을 허용하지만, 일정한 보상 시간을 둬 전체적으로는 1일 평균 근로시간이 8시간이 넘지 않도록 하고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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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는 프랑스가 연간 220시간의 연장노동시간 제한을 두고 있다고도 했지만, 프랑스가 1일(최장 10시간)과 1주(최장 48시간) 단위 규제도 함께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은 언급하지 않았다.
강 의원은 “정부의 노동시간 개악은 노동시간제도의 근간을 ‘완전 유연근로시간제’로 개편하자는 것”이라며 “해외 사례를 살펴봐도 유례가 없고 주별 노동시간 상한을 정한 국제노동기구(ILO) 기준에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노동자들의 건강권에 심대한 위해를 끼칠 개악안을 철회하고 주 40시간 제도 안착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