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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파트2 시작…영광과 지옥 사이, 종착지는?

  •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동은이 원하는 최고의 복수는…학폭 피해에 대한 ‘사회적 공감’ 아닐까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취임 하루 전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 사태는 <더 글로리>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과 선명하게 대조되며 공분을 샀다. 넷플릭스 제공

아들의 학교폭력 논란으로 취임 하루 전 국가수사본부장에서 물러난 정순신 변호사 사태는 <더 글로리>의 피해자 문동은(송혜교 분)과 선명하게 대조되며 공분을 샀다. 넷플릭스 제공

올 초, 드라마 <더 글로리>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꽤나 어리둥절했을 것이다. 여기저기서 “내 꿈은 너야, ○○○”이라거나 “보고 싶어 죽는 줄~”, 박수를 치며 “멋있다, ○○○!”이라고 이름을 연호하는 장면들이 일상적으로 연출되었을 테니까. 2022년 12월30일 파트1이 방영된 넷플릭스 오리지널 드라마 <더 글로리>의 명장면 패러디이다. 김은숙 작가와 송혜교의 출연으로 공개 전부터 화제를 몰았던 <더 글로리>는 시청률과 화제성을 동시에 잡았다. <더 글로리>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안타까운 소식 하나, 봄바람을 타고 비슷한 상황이 반복될 예정이다. 2023년 3월10일 파트2가 공개되었다(이 글을 쓰는 시점에서는 아직 미공개이기에 글의 내용은 파트1에 한한다).

<더 글로리>의 공식 소개는 다음과 같다. “유년 시절 폭력으로 영혼까지 부서진 한 여자가 온 생을 걸어 치밀하게 준비한 처절한 복수와 그 소용돌이에 빠져드는 이들의 이야기”. <더 글로리>는 학교폭력의 피해자였던 문동은(송혜교)이 학교를 자퇴한 후, 폭력의 주동자였던 박연진(임지연)에게 복수하고자 하는 이야기다. 학교폭력은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이자 미디어에서도 꾸준히 다룬 소재다. 그러나 오랫동안 ‘친구끼리의 싸움’이나 ‘어린 날의 실수’ 정도로 피해의 심각성이 축소되었다. 최근 정순신 변호사의 아들이 학교폭력 가해자이며 이를 가해자 가족 측에서 법적 전문성을 동원하여 은폐하거나 축소하려 했던 사건이 공분을 샀다. 몇 년 사이 유명인들의 학교폭력 가해가 사회관계망서비스 등을 통해 밝혀지면서 이것이 더 이상 ‘어린 날의 실수’로 묻어버릴 수 없는 엄연한 폭력이자 범죄라는 인식이 확산되었다. 그러나 여전히 학교폭력 피해자는 고립되고, 가해자는 ‘잘 먹고 잘사는’ 현실이 사법 체계와 교육계에 대한 불신, 사적 복수에 대한 욕망을 부추긴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이 말은 동은에게 ‘지금은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애초에 학교폭력이 심각해지는 구조에는 학교의 방관이나 적극적인 은폐,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치안 시스템이 있다. 결국 피해자들은 양자택일의 좁은 길로 흘러든다. 죽거나, 사적으로 복수하거나. 데스 게임이 따로 없다. 누군가의 죽음 뒤에 복수라는 단 하나의 선택지로 내몰리기도 한다. <약한 영웅>(웨이브 오리지널, 2022), <경이로운 소문>(OCN, 2020)처럼 ‘싸움 실력’으로 가해자를 제압하지 못하면 <돼지의 왕>(티빙 오리지널, 2022)처럼 살인을 감행하거나 <3인칭 복수>(디즈니플러스, 2022)처럼 피해자의 죽음에 얽힌 진실을 좇아야 한다. 잘못 없이 피해를 입은 것만도 힘든데, 복수는 ‘셀프’다. 싸움을 잘하거나, 하다못해 상대가 ‘잃을 것’이라도 있어야 유의미한 타격을 줄 수 있다. 1차원적이거나 물리적인 복수는 도리어 명예훼손이나 협박, 상해 등의 처벌을 받을 위험이 크다.

고차원적인 복수는? 말 그대로 비싸다. 인내와 돈이 있어야 하고, 조력자를 갖추고, 노력해야 한다. 동은은 학력 자본을 바탕으로, 과외를 통해 복수 비용을 마련하고, 평생을 걸어 노력한 끝에 마침내 연진의 아이 예솔이 다니는 초등학교에 교사로 부임한다. 초기에 이 설정이 공개되었을 때, 직업윤리에 관한 논란이 있었으며 이는 아동과 교육이 연루된다는 점에서 타당한 우려였다. <더 글로리>에서 동은은 힘들게 예솔의 담임 교사가 되지만, 아동인 예솔에게 직접적인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자신의 소중한 존재에게 가까이 온 동은의 존재는 그 자체로 연진에게 위협으로 다가온다. 동은은 바둑을 배워 연진의 남편에게 다가가는가 하면 연진의 패거리 앞에 나타나 각자의 욕망을 들쑤신다. 언제나 가장 높고 밝은 곳에서 군림하며 살아오던 연진의 일상, 폭력과 위계로 형성된 그의 관계망은 그때부터 ‘내부적으로’ 흔들리며 균열이 간다.

“맞은 놈은 펴고 자고 때린 놈은 오그리고 잔다”는 속담이 있다. 맞은 사람보다, 때린 사람이 뒷수습 때문에 속이 시끄럽다는 뜻이다. 이 말은 동은에게, ‘지금은 틀리고 그때도 틀리다’. 아무도 동은을 보호하지 않았고, 연진은 그 구조를 정확히 파악하여 “사회적 약자”라고 판단한 학생들을 피해자로 선별한다. 동은은 그 폭력의 계보 중 한 사람이며 맞았기 때문에 평생 ‘펴고’ 자지 못했다. 일상적인 기쁨이나 행복이 자신의 복수심을 옅게 할까 봐 웃음을 아끼고 평범한 식사의 기대조차 누리지 않는다.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최현정 역, 플래닛, 2007)라는 책에서 “성인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이미 형성된 성격 구조가 파괴된다. 그러나 아동기에 반복적인 외상을 경험하게 되면 성격이 단지 파괴되는 것만이 아니다. 이것은 성격을 만들어 낸다”(169페이지)고 말했다. 오그리고 자던 자세는 그대로 동은의 몸이 되었다. 오그린 채의 동은에게 “너의 인생을 살라”거나, “잘 사는 게 최고의 복수”라는 식의 말은 무의미하다. 한편 연진은 동은이 나타난 이후 비로소 ‘오그리고’ 자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자신의 안위에 대한 불안 때문이지 반성이나 참회는 아니다.

많고 많은 복수극 중 <더 글로리>만의 고유함을 꼽자면, 사적 복수에 대한 작품의 관점과 여성 인물 간의 팽팽한 관계성이다. 동은은 자신의 복수가 어떤 책임을 수반하는지 정확히 알고 있으며, “맞고 살지만 명랑한 년”인 현남(염혜란)이 꿈꾸는 복수 이후의 평범한 삶은 없다고 단언한다. 많은 이들이 이미 언급하였듯, <더 글로리>는 피해자의 처지에서도 복수가 ‘사이다’나 ‘글로리(영광)’ 즉 최선은 아니라는 사실을 전면화한다. 그런데도 동은이 복수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여러 요인은, 시청자들의 경험 속에서 다양하게 재배치되고 재생산되며 공감을 끌어낸다. 동시에 시청자는 연진을 향한 동은의 강렬한 감정에 매혹된다. 동은은 연진이 “내 꿈”이라고 말할 만큼, 연진이 준 고통과 피해 속에 갇혀 산다. 그래서 연진에게서 벗어날 수 없다. 연진의 사진으로 도배된 동은의 방은 동은의 심리적 상태를 물리적으로 구현한 공간이다.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 공포 중 하나를 ‘침투’이자 ‘재경험’이라고 정의한다. 동은은 일상의 사소한 순간에서 끝없이 연진의 가해를 재경험한다. 사진의 플래시가 터질 때, 고기 굽는 소리를 들을 때, 화상자국이 간지러울 때. 동은에게 연진의 존재는 너무 크다. 반면 연진에게 동은은 너무 작다. 연진에게 가해 사실은 그저 학창 시절의 유희에 불과했고, 피해자들은 다수였기에 동은은 개별적인 존재로 입력되지 않는다. 동은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 상상 속의 연진에게 스테이플러를 박으며 “적어도 날 알아는 봤어야지”라고 읊조린다. ‘나’의 전부를 잠식한 피해가 너에게는 ‘별것’ 아니었음을 직시하는 순간, ‘너’ 역시 ‘나’를 잊을 수 없게 만들어주겠다는 감정은 단순한 복수심을 넘어선다. 동은은 말한다. “어떤 증오는 그리움을 닮아서 멈출 수가 없거든.” 이 역할을 멜로퀸 송혜교가 맡았다는 점은 의미심장하다.

소위 ‘일진’과 ‘이진’과 ‘삼진’의 관계 같은, 권력의 생태계를 생생하게 그려낸 점 또한 인상적이다. ‘일진’이 권력 피라미드의 최상위층이라면, ‘이진’과 ‘삼진’은 그 패거리에 속해 있되 일진에게 기생하는 형태를 띤다. 이들은 형식상 친구지만 서열이 뚜렷하다. 혜정(차주영)은 평범한 세탁소집 딸로, 연진은 물론 이진인 사라(김히어라)와도 압도적인 재력 차이가 난다. 명목상 친구라지만 연진의 패거리는 대놓고 혜정의 외모나 행실이 문란하다고 조롱하거나, 계급 상승을 꿈꾸는 욕망을 멸시한다. 연진의 가해에 재미 이외에 아무런 이유가 없다면, 혜정은 연진과 사라에게 잘 보이기 위해 적극적으로 동은을 괴롭힌다. 동은이 없을 때 연진과 사라의 화살은 종종 혜정을 향한다. 이렇듯 촘촘하게 얽힌 권력 구조가 굴절하고 반사되면서 폭력을 생산한다. 지지기반이 약한 혜정은 동은의 출연에 가장 먼저 무너지며 자신의 안위를 위해 연진을 버리고 동은에게 협조하겠다고 나선다.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이진송 계간 홀로 발행인

<더 글로리>의 최종 목적지는 어디일까. 동은은 지옥에 떨어지더라도 갖고 싶은 자신만의 영광을 찾을 수 있을까. 당연하고 뻔한 말이지만, 예방과 적절한 차단이 필요하다. 피해자는 가해자의 진실한 사과와 반성이 있어야 이후의 삶을 살아갈 수 있다. 이러한 사과와 반성은 가해자 개인에게만 요구할 것이 아니라 공공의 영역에서 올바르게 구성되도록 촉구해야 한다. 주디스 허먼은 트라우마 생존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사회적 지지’라고 말한다. <더 글로리>에서 동은은 학창 시절 자신의 피해 사실을 증명해주려 애썼던 보건 교사를 평생 기억한다. 적극적인 지지나 공감, 사랑, 신뢰는 한두 명의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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