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그림자
김규정 글·그림
보리 | 48쪽 | 1만5000원
붉게 물든 하늘 위로 철새 무리가 대형을 맞춰 날아간다. 그를 닮은 새 그림자들도 떼 지어 함께 이동한다. “난 날기 위해 존재해. 세상은 우리 날갯짓의 배경일 뿐이야. 그런 무리에 함께 있다는 게 자랑스러워.” 새 그림자는 무리 속에 있는 자기 모습이 퍽 마음에 든다.
노을이 눈부시게 아름답던 날, 새 그림자 하나가 멍하니 노을을 바라보다 그만 무리에서 떨어진다. 그는 다시 무리 속으로 돌아가려 발버둥 치지만 그의 자리는 이미 다른 그림자가 차지한 참이다.
혼자가 된 새 그림자는 앞으로 어떻게 할지 막막하다. 날 수 없으면 새가 아니다. 그림자는 날 수 없다. 그렇다면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지. 한 번도 해보지 않은 고민 속에서 새 그림자는 결심한다. 새로운 무리를 찾기 전에 우선 혼자 힘으로 어디든 한번 가보자고.
날 수 없는 대신 다른 탈것들에 몸을 맡기자 전에 보지 못했던 풍경들이 다가온다. 버스 짐칸, 자동차 위, 오토바이 뒷자리, 짐이 가득한 기차 짐칸에 올라탄 새 그림자는 너른 들판, 강, 바다, 산 곳곳으로 향한다. 어렴풋이 내려다봤던 세상을 온몸으로 느낀다. 사슴과 풀을 함께 뜯고, 고래상어에게 파도 타는 법을 배우고, 곰과 물고기를 먹으며, 높은 산에서는 눈표범과 친구가 된다.
우연히 겪은 낙오 앞에서 좌절 대신 모험을 택한 새 그림자는 그렇게 ‘그림자 새’가 된다. 새 그림자의 눈에 비친 세상은 선명한 생기로 가득하다. 당연하다고 여겨온 삶의 길에서 살짝 어긋나는 건 어쩌면 더 다채로운 삶을 살아볼 기회인지도 모른다.
작가는 “그림자로 살지도, 아이들에게 그림자로 살 것을 강요하지도 않는 세상”을 바란다고 했다. <새 그림자>는 지금 내가 가는 이 길이 내 길이 맞는 걸까, 나는 지금 맞는 옷을 입고 있는 걸까 고민하는 어른에게도 위안이 되는 그림책이다. 책을 덮고 나면 무리 속에서 무언가의 그림자가 되기보다 그 자체로 존재하고 싶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