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최근 파산한 미국 실리콘밸리은행(SVB) 사례처럼 국내에서도 예금대량인출(뱅크런) 사태가 발생했을 때 예금자가 맡긴 돈을 정부가 모두 보장해줄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당장 파산 우려가 큰 금융사는 없지만 모바일뱅킹과 같은 비대면 금융거래 서비스가 미국보다 더 일상화한만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는 차원이다.
15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와 예금보험공사 등은 뱅크런이 있을 때 금융사 예금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증할 수 있는지 검토하고 있다. 금융위 관계자는 “SVB가 파산한 후 미국 정부가 한 조치가 국내에서도 가능한지, 어떤 절차를 거쳐야 하는지 확인하고 있다”고 말했다.
미 재무부,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예금보험공사(FDIC)는 SVB 폐쇄 이틀 후이자 주식시장 개장 전날인 지난 12일(현지시간) 공동 성명을 내고 모든 예금주가 맡긴 돈 전액을 찾을 수 있게 하겠다고 밝혔다.
미국의 예금자 보호 한도는 계좌당 25만달러(약 3억2560만원)인데 이를 초과하는 예금도 인출 가능하고 납세자가 부담하는 세금은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SVB는 실리콘밸리 기업을 주요 고객으로 하고 있고, 전체 예금의 약 90%는 예금자보험 한도를 초과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예금자 보호 한도는 1인당 5000만원이다. 보호한도는 대통령령인 예금자보호법 시행령에서 규정하고 있기 때문에 변경절차는 법률보다 쉽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SVB의 특수성을 고려하면 국내에서 유사 사례가 발생할 가능성은 작지만 만약 뱅크런이 발생해 긴급한 조치가 필요하다면 임시 국무회의를 열고 대통령령을 개정해 공포·시행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 사례도 있다. 정부는 국제통화기금(IMF) 사태가 본격화하기 직전인 1997년 11월 은행, 보험, 종합금융, 증권(금융투자업) 등 업권의 모든 예금의 원금과 이자 전액을 정부가 지급 보증한다는 금융시장 안전대책을 발표했다. 이전까지 업권별 보호 한도는 은행·보험·저축은행·종합금융 각 2000만원, 증권 5000만원이었다. 이후 금융시장 불안이 어느정도 가라앉고 도덕적 해이 논란은 커지자 이듬해 7월 ‘2000만원 이하는 원금과 이자, 2000만원 초과는 원금만 전액보호’로 변경됐다. 2001년에 전 금융권 보호한도가 5000만원으로 조정된 후 지금까지 변화가 없었다.
정치권과 금융소비자업계에서는 뱅크런 대비와 별개로 예금자 보호 한도를 높여야 한다는 주장이 계속되고 있다. 2001년에 비해 크게 오른 물가를 감안하면 5000만원으로는 예금자를 충분히 보호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다만 예금보호한도를 확대할 경우 은행이 예보에 납부해야하는 예보료율이 올라가 부담이 커지게 된다.
금융위는 지난해 3월부터 관련 내용을 검토하는 민관합동 태스크포스(TF)를 운영하고 있다. 이달에 연구용역 결과와 TF 논의 결과를, 오는 8~10월 중에 적정 수준의 예보료율 검토 결과와 예금자 보호 한도 개정안을 각각 국회에 보고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