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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현수막 공해, 이건 아니죠

입력 2023.03.24 03:00

수정 2023.03.24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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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비우고 운동 부족도 때울 겸 자주 걷는 편이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근래 들어 걷다 보면 영혼이 더 어지러워진다. 여기저기 시야를 가로막는 현수막들. 정당들의 자랑이나 상호비방이 대부분이라 점심 가는 길에 입맛까지 쓰게 한다. 기분 탓일까, 왜 이렇게 갑자기 현수막이 많이 보일까. 알고 보니 법이 바뀌었기 때문이다.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이미경 환경재단 대표

2022년 12월11일부터 개정 옥외광고물법이 시행되었다. 개정법은 ‘정당법’에 따른 ‘통상적인 정당 활동 범위’의 정당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해서는 별도의 신고·허가·금지 등 제한 없이 현수막을 설치할 수 있도록 했다. 그 결과 전국적으로 정당 현수막으로 시민들이 몸살을 앓고 있다. 보행자나 운전자의 시각을 가리는 것은 물론 소상공인의 가게 간판을 가려 명백한 영업방해임에도 제한할 방법이 없게 되었다.

세상에 이런 특혜가 있나. 공공장소에 현수막 하나 걸려면 얼마나 문턱이 높은지 행사 한번 치러본 사람들은 다 안다. 그런데 정당 현수막은 아무 제약 없이 걸 수 있다니, 언제 이런 법이 만들어진 걸까.

2020년부터 꾸준히 여러 국회의원이 개정을 요청해 마침내 2022년 5월 국회 행정안전위를 통과, 본회의에 상정되고 전자투표를 거쳐 가결됐다. 여야 없이 재석 의원 227명 중 204명이 찬성표를 던졌다 하니 근래에 보기 드문 초당적 일치단결의 모습이다. 의원들이 이런 난립상을 예상하고 법안을 발의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선거를 치러야 하는 마당에 마땅히 후보를 알릴 길도 없고, 돈도 없는 소수당 후보에겐 거의 유일한 홍보수단일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결과는 거리의 흉물이요, 또 하나의 쓰레기산을 낳았다.

이런 일도 있다. 2030 세계박람회를 유치하기 위해 국제박람회기구(BIE) 실사단 방문기간에는 정당 현수막을 걸지 않기로 뜻을 모았다.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은 BIE 실사기간(4월2~7일) 현수막을 걸지 않고, 걸었던 것들도 4월1일까지는 철거하기로 했다. 시내에 어지러운 현수막이 실사단 평가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말하자면 시민들의 피로를 다 알고 있었다는 건데, 국민의 공복을 자처하는 분들의 그 속셈에 할 말이 없어진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자료에 따르면 2018년 전국지방선거, 2020년 국회의원 선거, 2022년 대통령 선거 등에서 발생한 현수막의 길이는 2739㎞로 인천공항에서 나리타공항을 왕복할 거리다. 벽보와 공보를 합하면 서울어린이대공원의 144배 면적의 종이가 쓰였다. 재활용률이 20~30%에 불과하고, 사용 후 즉시 소각장으로 향해 탄소배출에 한몫하는 일에 정부 예산이 쓰였다.

정부가 지난 21일 2030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국가 온실가스 감축목표를 2018년 배출량 대비 14.5%에서 11.4%로 하향조정하는, 글로벌 추세에 역행하는 조치를 내놓아 논란이 되고 있다. 현수막 건은 빙산의 일각이다. 정부, 기업, 개인이 탄소를 뿜어내는 요인들이 사방에 널렸는데, 줄일 생각은커녕 모래알처럼 흘려보내면서 어째서 감축목표 줄이는 데 그토록 노력하는지 묻고 싶다. 부자들은 작은돈에 민감하다. 작은돈 모아서 큰돈 되고, 천리길도 한 걸음부터. 소소한 기후행동이 먼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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