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 기업이 보는 탄소중립
‘과학기반 목표’ 가입한 업체들
‘온실가스 감축’ 파리협약 잘 지켜
볼보트럭·스카니아·알파라발 등
단계별로 배출량 줄이기 적극적
윤리 차원 넘어 ‘사업 기회’ 인식
정부의 ‘화석 없는 스웨덴’ 정책
각 산업 탄소중립 협력 이끌어내
높이 4m, 너비 2.55m, 길이 16.5m. 지난 13일(현지시간) 육중한 외양을 한 볼보트럭의 대형 전기트럭이 스웨덴 예테보리에 있는 공장 내를 ‘조용히’ 달렸다. 내연기관 트럭처럼 그르렁거리는 굉음은 들리지 않았다. 랄스 몰텐손 볼보트럭 환경·혁신 디렉터의 설명이 이어졌다. “고객의 기대보다 한 발짝 앞서나간다면 회사에 큰 이익이 될 수 있다. 기후 대응, 지속 가능성에서 우리는 선두에 서야 한다.”
볼보트럭을 비롯한 스웨덴 녹색전환연합 기업들은 단기적, 장기적 목표를 나누어 온실가스를 감축하고 있다. 이들에게 기후위기 대응은 국제사회의 ‘약속’을 이행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회사의 ‘이익’을 만들어내는 정책이다.
‘과학기반목표’ 따르는 스웨덴 기업들
기업들은 한국의 취재진에 ‘지속 가능성’을 소개하며 하나같이 ‘파리협약’을 이야기했다. 주로 과학 기반 목표 이니셔티브(SBTi)에 따른 온실가스 감축을 약속하고,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SBTi에 가입하는 기업·금융기관은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지구 평균기온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도나 2도’ 상승으로 제한하는 목표를 세워야 한다. 기업은 향후 5~10년 사이의 단기 목표와 함께 10년 이상을 포괄하는 장기 목표도 제시해야 한다. 이 목표는 기업의 온실가스 배출 범위에 따라 스코프1~3로 구분된다. 스코프1은 해당 기업 내에서 연료 연소 등으로 인한 직접 배출이다. 스코프2는 해당 기관이 산 열, 전력 등의 사용으로 인한 간접 배출, 스코프3는 조달·공급망, 제품 이용 단계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를 포함한다.
원심분리기를 이용한 폐수 처리 등을 하는 기업 ‘알파라발’은 2020년 스코프1~2에서 4만3762t, 스코프3 공급망에서는 32만5000t, 스코프3 이용 단계에서는 2000만t의 온실가스를 배출했다. 알파라발은 올해까지 스코프1, 2 범위의 온실가스를 50% 줄일 것이라고 밝혔다. 2030년까지는 스코프1, 2에서는 아예 온실가스 배출량을 0으로, 스코프3에선 온실가스를 2020년 대비 50%로 줄일 계획이다.
건설 장비, 전동 공구 등을 만드는 아트라스콥코는 2030년까지 ‘지구 기온 상승 1.5도’ 목표 달성을 위해 스코프1, 2 범위에서는 2019년 대비 46%, 2도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스코프3 범위까지 28%를 줄이기로 약속했다.
정치권, 업계와 협업
변화 가능성 보여야
7년 안에 전기 트럭 판매 2% → 50%?
버스와 트럭을 만드는 스카니아는 2025년까지 스코프1, 2에서 온실가스를 2015년 대비 50% 줄일 계획이다. 스코프3에서도 20%를 줄인다. 스카니아는 2022년까지 공장 지붕을 태양광 패널로 덮고, 공장 석유 보일러를 전기 히트 펌프로 바꾸고, 공정 효율을 높여 이미 44%를 줄였다. 야콥 테르노 스카니아 지속 가능한 수송 디렉터는 “스코프1, 2 목표를 달성할 것이라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며 “스코프3까지 포함한 목표는 정말 어려운 것이지만,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전력화된 자동차 판매를 늘리고, 운전자의 운전습관에 대한 지도를 통해 달성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볼보트럭은 2030년까지 판매하는 트럭의 50%를 전기트럭으로 채울 계획이다. 스웨덴 내에서는 전기트럭 판매 비중이 적어도 70%는 될 것이라고 본다. 2023년 기준 볼보트럭 판매량 중 전기트럭이 차지하는 비중은 2%에 불과하다. 매년 약 1.6배씩 규모를 키워야 달성할 수 있다. 랄스 몰텐손 볼보트럭 환경·혁신 디렉터는 “세계적으로 시장이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본다”며 “우리는 선두에 서고자 하는 고객을 찾을 것이고, 다른 국가들에 ‘가능하다’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라고 말했다.
볼보는 2040년까지 스코프3 범위에서도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는 목표를 세웠다. 전기트럭 판매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는 목표다. 소비자가 화석연료로 생산한 전력을 쓸 수 있다. 화석연료로 만든 전기를 쓰는 소비자에게는 아예 볼보트럭을 팔지 않겠다는 심산일까. 랄스 디렉터는 “석탄 화력 발전소를 이용해 전기를 생산하는 곳에서 전기트럭을 판매하면 우리 기후 목표에 좋지 않을 것이라는 의미”라며 “제품을 판매하지 않는 것도 확실히 고려하고, 그 나라에서 재생에너지를 공급받을 수 있는 기업과의 협력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스웨덴 기업들이 유달리 ‘도덕적’이어서 기후위기 대응에 적극적인 것은 아니다. 여기서 ‘사업 기회’를 찾고 있기 때문이다. 스카니아의 야콥 디렉터는 “우리가 진정 지속 가능한 회사로 여겨지지 않으면 몇 년 안에 우리가 필요한 인재와 투자자를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것”이라며 “단기적 수익과 장기적 목표 사이에 갈등이 없다는 의미”라고 말했다.
녹색 정책 안 내놓으면
한국도 위험할 수 있어
“한국도 ‘녹색산업 정책’ 필요해”
스웨덴 기업의 강력한 녹색전환 뒤에는 스웨덴 정부의 ‘기후 대응 정책’이 있다. 2017년 스웨덴 의회는 2045년까지 탄소중립을, 2030년까지 2010년 대비 70%의 온실가스를 감축하는 것을 골자로 한 법을 통과시켰다. 스웨덴 정부는 다양한 학자·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독립기구 기후정책심의회를 설치해 정부정책이 기후 목표와 일치하는지 수시로 확인한다. 스웨덴 정부는 매년 예산안에서 온실가스 배출량 추세, 직전 해의 주요 기후 정책 결정, 필요한 추가 조치 등을 담은 기후 보고서를 발표한다. 심의회가 2022년 3월 발표한 보고서는 “다음 기후 정책 실행 계획은 가속화를 위한 계획이어야 한다”며 정부의 거버넌스 개선, 주요 부문 목표 강화, 기후 투자 강화 등을 담았다.
산업계도 역할을 했다. 정부가 주도해 2015년 만든 ‘화석 없는 스웨덴’ 이니셔티브는 정부, 기업, 지자체, 기관 사이 가교 구실을 하며 관련 정책을 발굴한다. 이니셔티브는 2018년에는 항공, 시멘트, 콘크리트, 철강 등 9개 산업 분야, 2019년에는 건설 자재, 난방, 해양 등 4개 산업 분야, 2020년에는 농업, 전력, 승용차 등 9개 산업 분야의 자발적 탄소중립 로드맵을 정부에 제출했다. 이니셔티브는 2021년 22개 산업 분야가 제출했던 로드맵을 재점검했다.
지난 14일 한국 취재진과 함께한 간담회에서 기업들은 “스웨덴이 선두주자로 기후와 관련한 정책을 수립하고 기업을 육성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안나 셀싱 알파라발 지속가능성 최고책임자는 “스웨덴이 앞서나가면서 우리도 선두 주자가 될 수 있고, 세계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며 “정치권이 업계 전반이 협업해 변화를 만들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미국 인플레이션방지법(IRA)은 ‘기회’라고 봤다. 니클라스 닐로스 볼보건설기계 지속가능성·공공부문 부사장은 “미국 투자에 대응해 유럽연합(EU)도 유사한 정책을 내고 있다”며 “한국에서도 비슷한 (녹색산업) 정책을 내놓지 않으면 한국에 위험이 될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탄소중립 정책이 ‘후퇴’하는 것에 대해 우려했다. 닐로스 부사장은 “생산 과정, 배송 시간 등이 중요한 만큼 이산화탄소 배출량도 마찬가지로 중요하다”며 “한국 사회가 스웨덴이 하는 것처럼 전환기에 움직이지 않는다면, 탄소 배출량 감축 관점에서 경쟁력이 감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나 셀싱 최고책임자는 “야심 찬 목표가 없다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