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인권보고서 처음 공개한 정부···‘북한 반발’로 남북관계는 시험대

박광연 기자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통일부 창설 54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이 지난 2일 정부서울청사 별관에서 열린 통일부 창설 54주년 기념식에서 기념사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통일부가 30일 역대 처음으로 정부 차원에서 조사·작성한 북한인권 실태 보고서를 공개했다. 국제사회와 함께 인권이라는 인류 보편의 가치를 앞세워 핵 개발에 천착하고 있는 북한을 압박하겠다는 윤석열 정부 의지가 반영됐다. 북한은 그간 인권 문제 제기에 “내정 간섭”이라고 강하게 반발해온 터라 남북관계는 시험대에 올랐다. 특히 남북 협상을 담당하는 통일부가 북한 인권 문제 제기에 앞장서면서 남북대화 재개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통일부는 이날 445쪽 분량의 ‘2023 북한인권보고서’를 발표했다. 그간 국내 연구기관이나 시민단체, 유엔 등 국제기구 차원에서 북한인권 관련 보고서를 내놨으나 정부 차원에서 이를 공개한 것은 처음이다. 2016년 북한인권법 시행에 따라 정부는 2018년부터 매년 북한인권보고서를 작성했으나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과 북한이탈주민(탈북민) 개인정보 공개 가능성 등을 고려해 그간 3급 비밀로 비공개해왔다.

보고서는 북한 주민들의 생명권 등 시민·정치적 권리, 식량권 등 경제·사회·문화적 권리, 여성·아동·장애인 등 취약 계층, 정치범수용소 등 특별 사안 부문으로 나눠 북한인권 실태를 담았다. 2017년부터 지난해까지 북한 내 인권 상황을 진술한 탈북민 508명의 증언을 토대로 했다. 통일부 당국자는 이날 브리핑에서 “2017년부터 매년 작성한 6년치 (비공개) 보고서를 모아 작성했다”고 말했다.

권영세 통일부 장관은 발간사에서 “이번 보고서 발간은 우리 정부가 북한인권의 실질적 개선을 위해 더욱 노력하겠다는 의지의 결과물”이라며 “단순히 북한인권 상황을 고발하는 데 있지 않으며 현재의 실태를 정확히 파악해 실질적 해법을 찾는데 근본적 목적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통일부의 북한인권보고서 공개는 윤석열 정부가 강하게 밀어붙이는 ‘북한인권 개선’ 정책의 일환이다. 현 정부는 출범 때부터 북한 인권 개선을 주요 국정과제이자 최우선 통일·대북정책으로 제시해왔다. 2017년 이후 5년간 공석이었던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를 지난해 임명했고, 5년 만에 유엔 인권이사회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 복귀를 결정했으며, 통일부 인도협력국을 인도인권실로 격상해 북한인권 업무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보고서에는 인류 보편의 가치이자 자유민주주의 관점에서 북한인권 문제가 심각하다는 정부의 인식이 반영돼있다. 북한인권 문제를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미국과 유엔 등 국제 사회와의 공조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이기도 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29일부터 북한인권보고서가 발표된 이날까지 민주주의 정상회의에 참석한 것도 유사한 맥락이다.

윤 대통령은 지난 28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의 인권, 정치, 경제, 사회적 실상 등을 다양한 루트로 조사해 국내외에 알리는 게 안보와 통일의 핵심적 로드맵”이라며 북한인권보고서 발간 의미를 강조하기도 했다.

정부는 핵무기 고도화에 천착하고 있는 북한을 압박하는 수단으로도 북한인권을 앞세우고 있다. 북한인권 개선을 후순위 과제로 미뤄둔 문재인 정부와 반대 기조다. 문재인 정부가 남북관계를 개선시키지도 못하고 북한인권을 후퇴시켰다는 것이 현 정부 인식이다. 권 장관은 지난 20일 “(북한인권 개선에 대한) 우리의 노력은 과연 충분했는지 냉정하게 돌아볼 수밖에 없다”며 “남북관계 악화를 이유로 댔지만 솔직히 그동안의 모습은 부끄럽기까지 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북한인권보고서 공개를 계기로 정부의 남북관계 개선 의지와 위기관리 역량은 시험대에 올랐다. 북한은 그간 유엔 등 국제사회를 중심으로 한 인권 문제 제기에 대해 “가장 비열한 적대 모략 책동” “주권 침해”라고 잇따라 강하게 반발해왔기 때문이다. 최근 한·미 대규모 연합훈련과 미국 핵 항공모함 전개를 빌미로 자행하는 북한의 도발적 군사 행동을 더욱 촉발시키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정부가 ‘북한인권 개선’ 드라이브에만 치중해 남북 ‘강 대 강’ 긴장을 고조시키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남북관계 전문가는 기자와 통화에서 “북한은 인권 문제 제기를 자신의 체제를 인정하지 않는 행위로 심각히 받아들인다”며 “정부의 북한인권보고서 발표는 남북관계 개선을 구조적으로 더 어렵게 만드는 시발점이 될 수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북한인권 문제와 군사적 문제 두 가지를 어떤 방식으로든 완화시키지 않으면 북한과 대화하기 어려운 상황으로 접어들 것”이라고 우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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