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의 역사
김학이 지음
푸른역사 | 528쪽 | 2만9500원
이순신은 <난중일기> 초입 15개월간 무려 38회 “분노”한다. 숱한 승리에도 ‘기쁨’이라는 감정은 거의 드러내지 않았다.
화가 나는 일엔 분노한다. 슬픈 일엔 슬픔을 표현한다. 너무도 당연해보이는 일이지만, 시대에 따라 감정을 표출하는 방식 그리고 그 시대의 사람들이 품는 주된 감정은 모두 달랐다. 우리가 ‘감정’을 통해 역사를 바라볼 때, 과거를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을 얻을 수 있는 이유다.
사학자 김학이는 <감정의 역사>에서 다양한 문헌 등에 드러난 독일 사람들의 16~20세기 감정의 변화를 살펴본다. 그는 감정이란 “도덕 공동체 구축의 핵심 기제”이며 시대별 ‘대표 감정’이 존재해왔다고 말한다. 예를 들어 16세기의 의사 파라켈수스는 폐와 별 등이 모두 분노 등의 감정을 가지고 있다고 보았고, 누군가가 페스트를 “두려워”하면 페스트에 걸린다고 말했다. 이처럼 감정을 억누르던 16세기에서 근대로 이행하면서 점차 개인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출하는 경향이 생겨난다. 하지만 다시금 나치 시대에 들어서며 노동자들을 “영혼을 갖춘 모터”처럼 “차분하게” 만들려는 시도가 생겨난다. 노동자, 시민들이 ‘무관심’하면 사회 정의 따윈 상관없이 각자의 삶과 생산성에만 집중할 수 있다. 오늘날은 가히 ‘감정의 시대’라고 할 만큼 감정 관련 산업들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잘 살게 된 것일까? 오늘날 우리는 어떤 감정에 얽매여 이를 어떤 방식으로 표출하고 살아가는가? 현대의 대표 감정으로 “공감”과 “혐오”를 꼽은 역사학자 피터 스턴스의 주장을 곱씹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