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 3월6일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을 발표하면서 이렇게 말했다.
“근로자에게는 주 4일제, 안식월, 시차 출퇴근제 등 다양한 근로시간제도를 향유하는 편익을 안겨주고 기업에는 인력 운용의 숨통을 틔워줄 것이다.” 이런 설명도 덧붙였다. “이번 개편안이 현장에서 악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점도 잘 알고 있다. 개편안이 당초 의도한 성과를 내기 위해서는 근로자의 권리 의식, 사용자의 준법 의식, 정부의 감독행정 등 세 가지가 함께 맞물려 가야 한다.”

홍진수 정책사회부장
저 발언으로 미루어 짐작건대 이정식 장관은 그날 기자들에게 정책 설명을 하면서 머릿속에 ‘이상적인 노동자’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것 같다. ‘권리의식을 갖고 다양한 근로시간제도를 향유하는 MZ세대 노동자’ 좀 더 구체적으로는 일이 주어지면 퇴근하는 것도 잊고, 온몸을 불사르듯이 열정적으로 일하고, 바쁜 일을 다 마치면 멋지게 휴가를 떠나는 노동자. 휴대전화 속 스케줄표에는 야근표와 휴가 일정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빡빡하게 붙어 있고, 밤샘을 하고 나서도 아침이면 일에 대한 열정으로 가볍게 일어나는 젊은 노동자. 자신의 책임을 다했는데도 부당한 일을 당하면 직속 상사는 물론 회사 대표에게도 할 말은 하는 노동자. 그리고 이런 ‘건전한 근로자’의 문제 제기를 흔쾌히 받아들이는 준법 의식 가득한 상사와 사용자까지.
이 장관을 비판하기 위해 내가 ‘뇌피셜’을 쓰는 것은 아니다. 이 장관이 근로시간제도 개편방안이 악용될 것을 우려하는 기자들에게 이런 말도 했기 때문이다. “요새 MZ세대들은 ‘부회장 나와라, 회장 나와라’ (해서) 성과급이 무슨 근거로 이렇게 됐느냐(라고 하는 등) 권리의식이 굉장히 뛰어나다.” 실제로 2021년 1월 회사의 성과급 지급 수준에 불만을 가진 SK하이닉스 직원이 기업 최고경영자(CEO)를 포함해 모든 구성원에게 e메일을 보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언론 보도를 보면 입사 4년차라고 밝힌 이 직원은 “성과급 지급의 기준이 되는 지수 산출 방식을 공개해 달라” “경쟁사와의 매출 격차는 인정하지만, 그 외 다른 경쟁사보다도 낮은 성과급의 이유는 무엇이냐”고 물은 것으로 알려졌다. 이런 노동자가 이미 2년 전에 나타났으니 이 장관이 ‘낙관적인 전망’을 한 것도 무리는 아니다.
문제는 ‘진짜 현실’이다. 세상에는 저렇게 권리를 당당하게 주장할 수 있는 노동자보다는 법적으로 보장된 권리마저 빼앗긴 노동자들이 훨씬 더 많다. 사용자가 무조건 악해서 그런 것이 아니다. 노동시장의 구조가 그렇게 만든다.
아무리 ‘요즘 세상은 안 그렇다’고 해도 한번 만들어진 구조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2년 전 SK하이닉스의 ‘이상적인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저렇게 물을 수 있었던 것은 당시 반도체 시장 호황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인력을 두고 경쟁을 했던 탓도 있다. 잠시나마 노동자가 사용자에게 큰 소리를 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을 때였다.
여전히 대부분의 노동자는 사용자 앞에서 약자다. 노조에 가입한 노동자는 14%(노조 조직률)밖에 되지 않는다. 정부가 ‘주 69시간’은 악의적인 프레임이고 ‘극단적인 가정’이라고 아무리 설명해도 많은 노동자가 공포를 거두지 않는 이유다. 주 40시간을 기본으로 하되 12시간 시간 외 근무를 시킬 수 있는 현 시스템이 ‘주 52시간제’로 불리듯이, 단기라도 ‘합법적으로’ 69시간 일을 시킬 수 있는 제도는 주 69시간제란 이름으로 불릴 수밖에 없다. 또 정부의 개편안대로 근무시간표를 작성해보면, 연장노동 관리단위가 ‘분기 단위’일 경우 69시간은 아니지만 ‘5주 연속 주 64시간 노동’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이는 ‘반기 단위’면 10주, ‘연 단위’면 18주까지 늘어난다.
현행 주 52시간 노동체제 아래에서도 OECD 국가 중 우리보다 많이 일하는 나라(2021년 기준)는 멕시코, 코스타리카, 콜롬비아, 칠레뿐이라고 한다.
정부가 정해 놓은 입법예고기간은 이번달 17일까지다. 정부는 그때까지 다양한 보완책을 만들겠다고 한다. 노동자의 휴식권을 생각해 개편안을 마련했다는 정부의 선의를 믿고 싶다. 다만 하나만 당부하고 싶다. 당신들의 머릿속에 들어 있는 노동자의 상을 바꿔라. 당당하게 자신의 권리를 요구하는 노동자 같은 허상을 지우고 구조적으로 약자인 노동자의 상을 집어넣으면 아마 세상도 달리 보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