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실가스 감축과 노동시간 단축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꽃도 덥다고 한다. 수도권 대학에서 ‘중간고사’라는 꽃말을 가진 벚꽃이 올해는 중간고사를 한참 앞두고 활짝 폈다. 지난달 20일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 제58차 총회는 ‘제6차 종합보고서’를, 다음날 우리나라 ‘탄소중립녹색성장위원회(탄녹위)’는 ‘제1차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저쪽은 엄중하고 긴급했고, 우리는 안이하고 느긋했다. IPCC는 보고서에서 온실가스 배출로 지구 평균 온도가 1.09도 높아졌고 현재 각국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계획을 모두 실행해도 2040년 이전에 1.5도 상승을 전망하고 인류의 미래가 향후 10년간 우리의 선택과 행동에 달렸다고 경고했다.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조현철 신부·서강대 교수

탄녹위 기본계획은 2018년 대비 40% 감축이라는 기존의 ‘2030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수치상으로 유지했을 뿐 부실하기 짝이 없다. 탄녹위는 온실가스 총 배출량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산업 부문의 감축 목표를 14.5%에서 11.4%로 줄이고, 줄어든 감축량은 ‘국제 감축’과 탄소 포집·활용·저장(CCUS) 기술 등으로 해결하겠다고 한다. 그동안 산업계가 요구한 대로 부담을 덜어준 셈인데, 기후위기 속에서 국제 감축량을 과다 책정해 국내 감축으로 이전하는 숫자놀음은 너무 한가하고, 상용화가 불확실한 CCUS로 감축량을 늘린다는 발상은 너무 무모하다.

노동시간 단축, 탈성장 길 열 수도

연도별 감축 계획에 의하면 2023~2027년에 4890만t(연평균 1.99%), 2028~2030년에 1억4840만t(연평균 9.29%)을 줄인다. 2030년 NDC의 75%를 다음 정부로 떠넘긴다는 발상은 너무 무책임하다. 더구나 이산화탄소는 한번 배출되면 최장 200년까지 대기에 머물며 온실효과를 내므로 온실가스는 ‘빠르게 많이’ 줄여야 한다. 감축을 뒤로 미루면 목표를 달성해도 효과는 줄어든다.

경제 성장에 매달리는 한, 기술만으로 온실가스를 적기에 필요한 만큼 줄일 수 없다. 생산과 소비 증대를 뜻하는 성장은 더 많은 물질과 에너지를 요구하므로 온실가스 배출량은 늘어나고 온도는 가파르게 상승한다. 그러나 자본주의는 기후위기가 심해져도 성장을 멈추려 하지 않는다. 자본주의는 비용 절감을 위해 노동 생산성을 향상하는데, 그러면 더 적은 인원으로 같은 양을 생산할 수 있지만 대신 고용 수요가 준다. 그래서 경제 규모를 늘리지 않으면, 곧 성장하지 않으면 생산성 향상과 함께 실업자가 늘어나는 ‘생산성의 함정’에 빠져 사회적 불안정과 고통이 커진다. 성장을 요구하는 구조적 압력이 언제나 작용하는 것이다.

그러나 성장이 생산성의 함정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은 아니다. 노동시간을 줄여도 고용 수요 감소를 막는다. 그러니 노동시간 단축은 성장의 덫에서 벗어나 ‘탈성장’으로 가는 길을 열 수 있다. 탈성장은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라 지금과 다른 경제와 생활방식에 기초한 삶의 방식을 뜻한다. 최근 정부가 내놓은 ‘주 69시간’ 노동시간 개편안은 여론이 좋지 않아 주춤한 상태지만, 노동시간을 늘리려는 정부의 의도는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지금도 여전히 ‘과로 사회’다. 2021년 기준 한국 노동자의 연간 실노동시간은 1915시간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199시간 많고, 독일보다는 566시간이나 길다. 한국 노동자는 주 52시간도 길다고 느낀다. 얼마 전 나온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2022년 전국 일·생활 균형 실태조사’에 따르면 취업자가 희망하는 주당 노동시간은 36.7시간으로 주 52시간제의 기본 근무시간(40시간)보다 짧았다. 젊을수록 희망 노동시간도 줄어서 19~29세는 34.97시간에 그쳤다.

1930년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생산성 향상으로 100년 후인 2030년엔 주당 노동시간이 15시간이면 충분하리라 예상했다. 2030년을 불과 7년 앞둔 지금 생산성은 놀랍게 향상했지만, 노동시간에 대한 희망은 빗나갔다. 자본은 생산성이 향상하면 노동시간이 아니라 노동자 수를 줄이고 성장을 지속하여 이윤을 늘려 왔다. 그러나 호주의 ‘이르 요론트’ 부족은 이전에 없던 쇠도끼가 들어와 생산성이 높아지자 생산 대신 수면 시간을 더 늘렸다고 한다. 어느 쪽이 사람이 살기에 ‘더 나은 세상’일까?

이젠 성장과 다른 길 모색할 때

노동시간 단축은 이제 희망을 넘어 현실이 되고 있다. 지난달 21일, 칠레 상원은 주당 법정 노동시간을 현재 45시간에서 40시간으로 줄이는 개정안을 만장일치로 가결했다. 가브리엘 보리치 칠레 대통령은 노동시간 단축이 “더 나은 칠레”를 위한 노력이라고 말했다.

성장하려고 생산을 늘리는 대신 노동시간을 줄이면 삶은 여유로워지고 가정이 살아나고 일자리도 늘어난다. 무엇보다 자원과 에너지 사용의 감소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자연스럽게 줄 것이다. 우리도 이제는 성장과 다른 길을 과감하게 모색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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