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하던 나의 세계 안에 ‘너’를 들여놓는다는 것

유수빈 기자
[그림책]공고하던 나의 세계 안에 ‘너’를 들여놓는다는 것

사랑은, 달아
박세연 글·그림
난다 | 48쪽 | 1만5000원

“당분간이야.” 달씨는 갈 곳 없는 개에게 단호하게 말했지만, 어느새 18년이 흘렀다. ‘당분간’이 잠깐이 아니게 될 것이란 건 달씨가 바지에 묻은 개털을 떼어내며 앞으로 지킬 규칙들을 읊을 때부터 예정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림책 <사랑은, 달아>는 낯선 생명에게 잠깐 쉴 곳을 내어주려던 마음으로 시작해 이제는 헤어질 시간이 두려운 반려인의 편지다.

식물을 물어뜯지 말고, 가구에 올라가지 말고, 짖지 말아줘. 달씨의 규칙이 개에게 통할 리 없다. 다른 존재와 함께 살면서 자신의 공간을 고스란히 지키는 건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었다. 달씨는 완벽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을 잃었다. 그의 일상에는 금이 갔지만 대신 그 틈새로 매일의 햇살, 건강, 미소가 스몄다. 자신의 규칙을 강요하는 대신 개에게 너의 규칙은 무엇이냐 물으며 서로 발걸음을 맞춰간 덕분이다. 달씨는 달라진 자신의 삶이 마음에 든다.

[그림책]공고하던 나의 세계 안에 ‘너’를 들여놓는다는 것

책장이 뒤로 넘어갈수록 분위기는 어둡고 컴컴한 밤에서 환한 낮으로 따스해진다. 집 안에 있던 달씨가 개와의 산책을 통해 밖으로 나서고, 달씨의 세계는 조금씩 밝아지고 넓어진다. 작가는 연필 선들을 슥슥 겹쳐 그어 두 존재의 일상이 쌓이는 시간을 그려냈다. 그 위로 차분한 나뭇결의 색을 차곡차곡 입혀 서서히 물들어가는 관계를 표현했다.

마음껏 달리는 개를 따라 자전거 페달을 밟는 달씨. “달아!” 달씨는 나지막한 목소리로 다정하게 부른다. 이별을 당하고도 그 의미를 잘 몰랐던 달씨는 이제 상대의 속도에 맞추고 서로 닮아갈 줄 안다. 자신의 규칙 안에 상대를 들이는 대신 같이 걷는다. 달씨의 얼굴엔 편안한 미소가 가득하다.

“개를 기른 것은 나인데 자란 것은 나입니다.” 작가의 말처럼 ‘나’와 개는 서로를 키웠다. 서로 닮아가며 자라게 하는 일은 사랑의 다른 말인지도 모른다. 달씨와 달이의 산책이 오래도록 계속되길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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