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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어교사모임 추천 도서지만 수업시간엔 읽을 수 없어요

어느 고등학교의 국어 교사가 학생들과 시 수업을 할 시인을 한 명 추천해 달라고 했다. 나는 내가 아는 젊은 시인 K를 추천했다. 그는 학교폭력의 아픔을 가진 사람이고, 그러한 폭력에 대한 천착을 계속 시도한다. 학교폭력 근절에 대한 관심이 많아서, 아니 반드시 그러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어서, 그와 관련한 시를 쓰고 학생들과 함께 낭송한다. 언젠가는 집 인근의 학교 정문에서 학교폭력과 관련한 자신의 시를 학생과 교사들의 등교시간에 맞추어 낭송하고 있는 그를 보고, 그의 진정성이란 의심할 수 없겠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김민섭 사회문화평론가

국어 교사는 나에게 취지도 참 좋고 기존 학교에서 좋은 반응도 있는 시인이시니 문제없을 것이라고, 특강을 부탁드리겠다고 말했다. K에게 그 소식을 전하자 그는 기뻐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서 교사에게 다시 전화가 왔다. 아무래도 다른 시인을 모셔야겠다는 것이었다. 이유를 묻자 그는 교감 선생님의 허락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했다. K의 시 일부 작품에 욕설이 들어 있는 게 문제였다. 학생들에게 욕설이 들어간 시집을 읽힐 수는 없다는 것. 그 국어 교사에게 이 시인의 진정성이라든가 그가 학교 현장에 필요한 시를 쓰고 있다거나 하는 말을 굳이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건 결정권을 가진 교감의 결정이고 여러 사정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예쁜 말로만 시를 쓰는 다른 시인을 추천해 드렸다.

지난주에는 친구 국어 교사 C의 인스타그램에 다음과 같은 글이 올라왔다.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C는 어느 작가의 소설로 국어 수업을 진행했다. 작가의 소속사에 메일을 보내 수업에 자료로 활용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고, 출판사에 메일을 보내 2차로 허락을 받고, 따로 활동지를 만들고, 모둠 수업을 준비하고, 골든벨 퀴즈대회를 열어 사비로 과자까지 사 먹였다. 며칠 후 학부모에게 민원이 들어왔다. 소설 중반부에 남자 주인공이 자위하는 장면이 있는데 어떻게 그런 걸 학교에서 수업 시간에 가르칠 수가 있느냐고. C는 그 소설이 전국국어교사모임 추천 소설이라고, 맨부커 상을 받아서 한국 문학의 쾌거라고 몇달 동안 떠들어댔던 한강의 <채식주의자>에는 형부와 처제의 성관계 장면도 나온다고 말할 수도 없고, 학부모 한 사람이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하겠다고 했다. 그러나 교감이 그를 호출해 이번 학기 수업한 자료를 몽땅 가져오라고 했고, 그 소설로 수업하는 이유는 뭔지, 한 명이라도 불편한 사람이 있으면 다시 생각해 보는 게 낫지 않겠느냐고 제안했다고 한다. C는 학생이 교사를 때려야만, 학부모가 교사에게 욕을 해야만 교권 침해인지, 교사가 수업할 권리를 존중받지 못하고 자신이 가르칠 텍스트를 검열받는 상황 역시 교권 침해라고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문학과 예술은 무엇이고 교사는 누구이며 학교라는 공간은 어디인가. 욕설과 외설이 한 줄 들어갔다고 작품이 아닌가. 교사는 유해한 사람이 되나. 학교는 밝고 따뜻한 것만 다뤄야 하는 무균실인가. 오히려 자신의 자녀를 믿지 못하고 교사를 믿지 못하는 그런 불안증이 아이를 약하게 하고 학교를 망친다. C는 “그냥 교과서 출판사에서 준 CD를 틀어두고 그거 읽어주면 되는데, 내가 왜 그랬을까, 내가 괜한 일을 했네”라고 말했다.

시인 K에게 그러한 이유로 특강이 취소되었다고 하자 그는 의외로 담담한 반응이었다. 한두 번 있는 일도 아니라는 것이었다. 교사 C와도 잠시 통화했다. 그도 이제는 괜찮다고 했다. 아이들이 많이 위로해 주었고 자신이 사랑하는 그 방식으로 계속 일해 나가겠다고. 2학기에는 박상영 작가의 <재희>를 함께 읽겠다고 해서, 나는 함께 웃고 전화를 끊었다. C가 올린 글에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댓글은 다음과 같다. “강릉 OO고등학교 3학년 일동은 C 선생님을 응원합니다.” 나도 C와 K를, 그리고 그들을 응원할 모두를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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