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청 당한 국가안보실…美, ‘우크라 포탄 우회 지원’ 논의한 김성한-이문희 대화도 들여다봤다

최서은 기자    유정인 기자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하르키우에서 우크라이나 군인들이 훈련을 하고 있다. AP연합뉴스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미군의 기밀 문건이 온라인에 대량 유출되면서 미 당국이 조사에 착수한 가운데, 미국이 적대국뿐 아니라 한국 등 일부 동맹국들도 감청해온 사실이 함께 드러나 파장이 예상된다.

미국 측의 동맹국 감청 의혹은 윤석열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나온 악재로 평가된다. 대통령실은 이번 사안이 한·미동맹에 중대 영향을 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美, 한국 정부의 우크라이나 무기 지원 논의 내용도 감청…윤 대통령 순방에 악재

이번에 외부로 유출된 미국 정부의 기밀 문서에는 우크라이나 전황부터 러시아의 동향, 북한과 이란의 핵 개발 상황, 중동 정세 등이 담겨 있다. 유출 문건은 총 100쪽에 이르며, 미 국가안보국(NSA)·CIA·미 국무부 정보조사국 등 정부 정보기관 보고서를 미 합동참모본부가 취합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된다. 한 미 고위 관리는 CNN에 “유출된 문건 대부분은 위조된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한국, 영국, 캐나다, 이스라엘 등 동맹국을 도감청해 얻은 내용들이다. 8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해당 문건 중 최소 두 부분에는 한국 정부가 미군에게 우크라이나 전쟁에 사용될 포탄을 공급하는 것이 살상무기 지원 금지 원칙에 위반되는지를 놓고 내부 논의를 한 내용이 담겨있다.

미 중앙정보국(CIA)의 일일 정보 업데이트에서 나온 것으로 분류된 한 문건에는 “한국의 관리들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윤석열) 대통령에게 전화해 물자를 제공하라고 압력을 가할까봐 우려하고 있다”고 적혀있다. 유출된 대화 내용은 이달말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리는 한미정상회담을 앞둔 시점에서 이뤄진 것이다.

문건에 따르면 이문희 당시 외교비서관은 “(포탄 지원에 관한) 분명한 입장 없이 한-미 정상통화는 곤란하다”며 “한국은 살상무기 지원 금지 원칙을 어길 수 없으므로, 유일한 선택지는 원칙을 공식적으로 바꾸는 것”이라고 말한다. 이어 임기훈 국방비서관이 이에 대해 3월2일까지 최종 입장을 정할 것이라고 했다는 말도 언급돼 있다.

그러나 김성한 당시 국가안보실장은 미국의 요구에 응할 경우 시기적으로 ‘국빈 방문’과 ‘포탄 지원’을 맞바꾼 것으로 비춰질까봐 우려한 것으로 나온다. 결국 김 실장은 “우크라이나에 탄약을 빨리 공급하는 것이 미국의 궁극적인 목표”이므로, 155㎜ 포탄 33만발을 우크라이나 무기 전달 통로인 폴란드에 판매하는 “가능성을 제시”했다.

뉴욕타임스는 공교롭게도 문건에 이름이 등장한 김 전 실장과 이 전 비서관 모두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방문을 한달여 앞둔 지난달 말 불분명한 이유로 사직하는 바람에 해명을 들을 수 없었다고 밝혔다.

또 문건에는 이같은 한국 내 논의 정보를 어떻게 파악했는지가 설명돼 있는데, NYT는 정보기관들이 전화 및 전자메시지 등 모든 종류의 통신 감청에 사용하는 “신호 정보 보고”라는 표현이 담겨 있다고 전했다.

결국 이 문건은 미국이 한국 영토 내에서 불법적인 도·감청을 했으며, 대한민국 국가안보 기밀을 다루는 국가안보실 주변이 외부의 도·감청에 취약한 상태라는 것을 증명한다.

NYT는 “이미 동맹국들과의 관계가 복잡해졌고, 미국의 비밀 유지 능력에 대한 의구심마저 자아냈다”면서 “이런 도청 사실이 공개되는 것은 우크라이나 무기 공급을 위해 도움을 받아야 하는 한국과 같은 주요 파트너 국가와의 관계를 방해한다”고 지적했다.

국제사회에서 미국에 대한 신뢰도가 하락함으로써 향후 외교 관계에 타격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한 서방 국가의 고위 관리는 문건들을 살펴본 후 “고통스러운 유출”이라며 향후 미국과의 정보 공유에 제한을 둘 수 있다고 언급했다.

대통령실 “살상무기 지원 금지 원칙 변함없어”

이달 말로 예정된 윤 대통령의 미국 국빈 방문을 보름여 앞두고 불거진 감청 의혹에 대통령실은 곤혹감을 드러냈다.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한국 정부가 미국을 통해 우크라이나에 무기를 ‘우회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다는 감청 내용이 보도된데 대해 “확정된 사안은 아니다”라며 “우크라이나 관련 우리나라의 기본 입장이 있고 그 입장에 변화가 없다”고 말했다. 한국 정부는 우크라이나에 의약품과 방독면 등 인도적 지원은 하지만 살상무기는 제공하지 않는다는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대통령실 관계자는 향후 미국 측에 항의나 진상파악을 위한 상세한 설명 등을 요청할 계획을 두고는 “과거의 전례와 다른 나라의 사례를 검토하면서 대응책을 보겠다”고 했다. 그러나 대통령실은 과거에도 한국과 다른 나라 등에 대해 비슷한 의혹이 불거졌지만 동맹 관계에 큰 영향을 주지는 않았다고 강조하는 분위기다. 한·미동맹이 굳건한 만큼 이번 의혹 역시 동맹 관계를 흔들 사안은 아니라고 판단하고 있다.


Today`s HOT
한화 류현진 100승 도전 인도 라마 나바미 축제 폭우로 침수된 두바이 거리 수상 생존 훈련하는 대만 공군 장병들
형사재판 출석한 트럼프 솔로몬제도 총선 실시
파리 올림픽 성화 채화 리허설 2024 파리 올림픽 D-100
APC 주변에 모인 이스라엘 군인들 400여년 역사 옛 덴마크 증권거래소 화재 장학금 요구 시위하는 파라과이 학생들 케냐 의료 종사자들의 임금체불 시위
경향신문 회원을 위한 서비스입니다

경향신문 회원이 되시면 다양하고 풍부한 콘텐츠를 즐기실 수 있습니다.

  • 퀴즈
    풀기
  • 뉴스플리
  • 기사
    응원하기
  • 인스피아
    전문읽기
  • 회원
    혜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