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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인진의 청안백안靑眼白眼] 정의는 농담이 아니다

입력 2023.04.10 03:00

수정 2023.04.10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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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를 요구하는 피해자 절규를
웃기는 소리로 치부하는
권좌 위의 가해자들이 있다

하지만 기억하라,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

국제형사재판소(ICC)는 지난달 17일 러시아 대통령 푸틴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그는 우크라이나 어린이들을 러시아로 강제이주시킨 혐의를 받는다. 우크라이나는 그 수를 1만6226명으로 보고 있다. ICC의 호프만스키 소장은 “ICC의 123개 회원국은 이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있다”고 밝혔다. 러시아는 과거 ICC의 회원국이었으나 2016년 탈퇴로 현재 비회원국이고, 우크라이나도 비회원국이다. 크렘린궁 대변인은 “러시아는 ICC 관할권을 인정하지 않으며, ICC의 결정은 법적으로 효력이 없다”고 주장했다.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정인진 변호사·법무법인 바른

그러나 ICC의 설립 근거인 로마규정 제12조, 제13조에 따라 범죄발생지국이 ICC의 관할권을 수락하면 범죄발생지국에 의한 회부나 소추관의 단독 회부에 의하여 관할권 행사가 가능하다. 내 지인에게 ICC의 영장 발부에 대한 의견을 묻자 그는 집행 가능성이 없을 거라며 “거의 농담 수준”이라고 답했다. 그럴까?

장 피에르 벰바는 콩고민주공화국의 부통령을 지낸 자다. 그는 반인도 범죄 혐의로 수배되었고 ICC의 체포영장이 발부되어 있었는데, 2008년 5월 지인의 결혼식에 참석하려고 벨기에에 입국했다가 경찰에 체포되었다. 벰바는 체포 후 2008년 7월부터 ICC에서 재판을 받다가 2016년 징역 18년을 선고받았다. ICC는 벰바가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 파견한 민병대에 의하여 2002년부터 2003년까지 저질러진 학살과 조직적인 강간을 지시한 책임을 물었다. 그는 항소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 10년여를 감금되어 있었다.

ICC가 2002년 설립되기 전의 일이지만, 이런 사례도 있다. 칠레의 독재자 아우구스토 피노체트는 1973년 쿠데타로 집권한 뒤 17년간 철권통치를 했다. 대통령 재임 기간 중 적어도 3200여명이 살해되고 2000여명이 실종된 것으로 알려졌는데, 그는 스페인 국적의 인권운동가와 민주화운동가들의 실종·살해에 연루된 혐의도 받고 있었다. 1985년 제정된 스페인 사법법에는 ‘스페인인 또는 외국인이 국외에서 저지른 집단학살이나 테러 등 범죄는 스페인 법원이 관할권을 가진다’는 조항이 있었다. 스페인 법원은 반인도 범죄를 이유로 피노체트에 대한 체포영장을 발부했는데, 그는 디스크 치료차 영국 런던을 방문했다가 1998년 10월 병원에서 경찰에 체포됐다. 스페인은 피노체트의 영국 체류를 파악하고 범죄인 인도조약을 맺고 있던 영국에 인터폴을 통해 체포를 요청한 상태였다. 피노체트는 당시 종신직 상원의원의 신분을 가지고 있고 외교여권을 소지하고 있다 하여 면책특권을 주장했으나 영국 법원은 이를 인정하지 않았다. 그는 503일 동안 억류돼 있다가 2000년 영국 법원의 결정으로 칠레에 송환됐다. 여러 차례 기소되었으나, 칠레의 정치권에 남아 있던 피노체트 추종세력이 끈질기게 그에 대한 사법처리를 방해해서 간신히 처벌을 면했고, 가택연금 상태에 있다가 2006년 죽었다.

전쟁은 인류의 진화가 아직 낮은 단계에 와 있다는 점에 대한 가장 확실한 증거다. 전쟁에서 저지르는 범죄 중 아동 강제이주를 포함하는 개념인 ‘집단살해죄’는 잔학성의 정도에서 다른 형사범의 유가 아니다. 2차 세계대전 이전만 해도 국가 아닌 개인의 책임을 물어 전범으로 처벌한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었다. 그러나 뉘른베르크 전범재판이나 도쿄 전범재판을 보라. 인류의 법적 상상력은 위대한 것이다. 현재 ICC는 집단살해죄, 인도에 반하는 죄, 전쟁범죄 등에 대한 소추권과 재판권을 행사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2007년 제정한 ‘국제형사재판소 관할 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법률’은 그 적용 대상 중 하나로 “대한민국 영역 밖에서 집단살해죄 등(ICC 관할 범죄)을 범하고 대한민국 영역 안에 있는 외국인”을 적시하고 있다. “국민적·인종적·민족적 또는 종교적 집단의 전부 또는 일부를 그 자체로서 파괴할 의도로 아동을 다른 집단으로 강제이주시키는 행위”는 ICC 관할 범죄다. 푸틴이 대한민국의 영역에 들어오면 대한민국은 그를 체포해야 할 협약상 의무가 있다.

이마누엘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문명사회가 모든 구성원의 동의로 해체되더라도, 마지막 살인범이 감옥에 남아 있다면 먼저 그부터 처형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회가 해체되는 마당에 왜 기어이 사형수를 처형하자는 것일까? 정의는 반드시 실현해야 하기 때문이다. 조사해 보니 ICC가 체포영장을 발부한 대상자 중 끝이 좋은 자는 없었다. 정의를 요구하는 피해자들의 절규를 ‘웃기는 소리’로 치부하는 권좌 위의 가해자들이 있을 게다. 하지만 기억하라. 정의는 농담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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