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학 전공하면 나중에 정치할 건가?” 숱하게 받아온 질문이다. 중·고생들에게도 비슷한 질문을 받은 적이 있는데, 반 농담으로 “정치외교학과 나오면 정치와 외교 빼고 뭐든 다 잘한다”고 답했다. 실제 선후배 중에 정치나 외교와 관련된 일을 하는 사람은 극소수다.
가끔 정치학이라는 학문 자체가 먹고사는 문제와 무관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오죽하면 <정치외교학과 진로개발>(이태동·백우열·최선 공저, 2019)의 부제가 “정치학 해서 뭐 해먹고 살래?”다. 정치학이 ‘먹고사니즘’과 직접적으로 관련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매력을 느끼기도 하고, 지금도 이런 환상에서 벗어나지 못해 학자로 살아가고 있지만, 생활인으로서는 ‘정치학 해서 먹고살기’ 쉽지 않음을 절감하고 있다.
교육자로서 강단에 설 때면 더 큰 딜레마를 느낀다. 분명 내가 의미 있고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학문인데도 이게 학생들에게 쓸모가 있을까 자조할 때도 있다. 학생들은 로스쿨에 가기 위해 더 좋은 학점을 원하고, 대학은 더 많은 학생을 감당할 수 있는 대형 강의를 권하며, ‘취·창업’과 ‘산업’‘사회 문제해결’이 좋은 교육의 평가 기준이 된다. 이런 현실이 정치학을 더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그러나 보다 근본적인 회의감은 우리 정치 현실이 이 지경이 되도록 정치학이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에서 비롯된다. 대안까지는 바라지도 않지만, 국가와 지역사회 수준에서 더 나은 정치를 고민하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을 배출하지 못하고 있다. 정치학이 우리 정치 현실에 기여하지 못하고 현실 정치에서 정치학 전공자를 찾아보기 힘든 상황인 것이다.
요컨대 정치학은 ‘쓸모’를 증명하는 데 실패했다. 그 결과 정치학은 민주시민을 위한 교양의 일부로 간주되거나, 상대적으로 ‘실용적인 학문’으로 간주되는 군사·안보학, 행정학, 정책학 등 유관학과에 흡수되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가 본격화된 지난 13년간 정치학과의 입학정원과 입학자는 각각 33%와 28% 감소했고, 대부분은 비수도권에 집중됐다. 로스쿨 진학 전 ‘프리로(pre-law)’과정으로 반사 이익을 얻어 선방한 결과가 그나마 이 정도다.
정치학이 다시 쓸모 있는 것이 되기 위해서는 정치학으로 먹고살 수 있어야 한다. 정치학을 ‘전공했음에도 불구하고’가 아니라 ‘전공했기에’ 먹고살 수 있는 길이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정치학이 ‘쓸모’를 증명해야 한다. 돌고 도는 이야기 같지만, 소위 ‘실용적 학문’이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해보면 의외로 답은 복잡하지 않다.
소진형 박사(서울대학교 인문학연구원)는 올해 1월 ‘인문 잡지 한편’에 기고한 “ ‘실용적인 학문’의 성립 사정(事情)”에서 소위 ‘실용적 학문’이라고 불려온 것들을 추적하며 그 허실을 살펴본다. 그에 따르면 “무엇이 실용적 학문인가”라는 질문 자체가 논쟁적이었으며, 실용적 학문은 “배우기만 하면 실용성이 생기는 것”이라거나 “행복한 미래”를 보장해주는 무언가가 아니라, 그 지식을 펼칠 수 있는 사회적 조건, 다양한 학문적 영역이 공존하는 제도와 조건이 마련되어 있을 때에만 비로소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요컨대 정치학이 ‘실용적 학문’이 되기 위해서는 당장의 ‘먹고사니즘’이나 ‘취·창업률’을 획기적으로 높이기 위한 방안이 아니라, 그것이 실용적인 지식으로 활용될 수 있는 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그리고 정치학의 ‘쓸모’를 사회적으로 재규정하는 것은 그 시작점이 된다. 정치학자들에게 논문 편수를 채우라고 요구하기보다 우리 정치의 현안을 묻고, 학생들에게 로스쿨과 대기업에 가라고 하기보다 더 나은 세상과 더 좋은 정치를 고민하는 사람이 되기를 바라고, 현실 정치에 법률전문가가 아니라 전문정치가가 더 많이 참여하기를 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