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눈 실명에 모욕까지···장애인 수형자도 사람답게 살고 싶어요”

이보라 기자
형집행정지로 일시 출소한 A씨가 지난 3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씨 제공

형집행정지로 일시 출소한 A씨가 지난 3월 서울 서초구에 있는 숙소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A씨 제공

“제가 몸이 많이 불편하잖아요. 죄를 지었으니 교도소에 있을 수밖에 없지만, 저같은 장애인이 교도소에서 최소한의 인간다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고민하는 계기가 됐으면 해요.”

장애인의 날인 20일, 장애인 수형자인 A씨(47)는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한 이유를 묻자 이렇게 말했다. 그는 교통사고로 척수가 손상돼 사지가 마비된 중증 장애인이다. 휠체어 생활을 하는 그는 다른 사람이 도와주지 않으면 거동이 힘들다. 특정경제가중처벌법 위반으로 11년6개월형을 선고받고 2015년 9월부터 교도소에 수감됐다가 형집행정지로 잠시 풀려난 상태다.

A씨는 2021년 광주지법 순천지원에 국가를 상대로 한 2억원의 손해배상청구소송을 제기했다. 법원에 장애인차별금지법상 차별시정 조치도 요청했다. A씨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으면서 장애인 차별을 당해 손해를 입었다고 주장한다.

국가인권위원회의 예비조사 결과보고에 따르면 A씨는 2018년 순천교도소의 의료조치 미흡으로 왼쪽 눈이 실명됐다. A씨는 2018년 9월20일 왼쪽 눈이 잘 안 보인다고 느꼈다. 다음날 교도소 측에 외부 병원에 보내달라고 요청했지만 교도소 측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A씨가 방치하면 실명될까 두렵다고 호소했지만 교도소 측은 “인권위 진정을 한 행동이 괘씸하다”며 묵살했다고 A씨는 주장했다.

추석 연휴가 끝난 뒤인 2018년 10월1일 A씨는 순천의 한 안과에서 진료를 받았다. 의사는 치료 시기를 놓쳐 시력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라고 진단했다. A씨는 3차 병원에서 응급 망막박리 수술을 받았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다. 인권위는 “수술 이후 최종 좌안 실명 진단을 받았다”며 “신속한 외부 진료 및 수술이 진행됐다면 현재 상태와 같은 실명 사태에 이르지 않았을 수도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했다. A씨는 “교도소의 늑장 조치로 중복장애를 갖게 됐다”고 했다.

A씨는 교도소 직원들로부터 언어 폭력도 당했다고 말한다. A씨는 2018년 7월 순천교도소 의료과에서 B 공보의가 자신을 눕혀놓고 진료를 보면서 “다리병신”이라고 모욕했다고 했다. 같은 해 10월에는 영치품을 배송하지 않은 것, 반말한 것에 항의하자 C 교도관이 “병신새끼”라고 욕했다고 했다. 인권위는 2020년 2월 A씨 주장을 대부분 사실로 인정했고 교도소 관계자들에게 인권교육을 권고했다.

A씨는 수년간 손잡이가 없는 화장실을 이용하는 등 장애인을 위한 편의가 갖춰지지 않은 교도소에 수용돼 불편을 겪었다고 했다. 지난해 12월 홍성교도소로 이감됐는데 이곳은 장애인 전담 교정시설이 아니다. 2021년 기준 법무부가 지정한 장애인 전담 교정시설은 안양·여주·포항·청주·광주·순천·군산교도소, 충주·통영구치소(지체장애인), 여주·청주교도소(시각장애인), 안양·여주교도소(언어·청각장애인)다.

A씨는 인권위에 진정을 제기한 뒤 교도관들로부터 여러 괴롭힘을 당했으며, 진정 서신도 일일이 검열 당했다고 주장한다. 2018년 11월 순천교도소의 동태관찰 사항 자료에는 김씨가 인권위에 서면진정서를 제출했다는 사실이 기록됐다. A씨는 2020년 6월 부친상을 당해 귀휴를 신청했으나 불허되기도 했다. 법무부는 법원에 제출한 의견서에서 교도소 측으로터 괴롭힘을 당했고 의료조치가 미흡했다는 A씨 주장은 일방적인 주장일 뿐이라고 했다.

경향신문 일러스트.

경향신문 일러스트.

A씨 같은 장애인 수형자는 적지 않다. 인권위가 2020년 공개한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20년 7월 기준 교정시설에는 총 1529명의 장애인 수형자가 수용됐다. 전체 수형자의 약 2~3% 규모이다. 장애유형별로는 지체장애가 771명(50.43%)으로 절반이 넘었다. 이어 지적장애 187명(12.23%), 시각장애 151명(9.88%), 정신장애 129명(8.44%), 청각장애 120명(7.85%), 뇌병변장애 65명(4.25%) 등이었다.

인권위가 2020년 10월 장애인 수형자 1529명을 상대로 설문조사한 결과, 장애인 수형자에게는 보조기기가 차지할 충분한 공간이 필요하지만 독방에 수용되는 경우는 8.5%에 불과했다. 응답자 중 30.4%는 구금시설 내에서 이동하는 데 장애로 인해 불편함이 있다고 답했다. 턱이 있는 데 경사로가 없거나 복도에 벽면 손잡이가 없는 탓이다. 건물에 엘리베이터가 있느냐는 질문에는 62.5%가 그렇지 않다고 했다. 화장실 역시 39.3%가 이용하기 불편하다고 답했다. 미끄럼 방지타일이 없다는 게 주된 이유였다.

목욕할 때 31.1%는 다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하는 경우가 23.3%에 달했다. 외부의료시설 진료를 희망한 후 진료를 받기까지 걸린 시간을 묻는 질문에는 ‘1달 이상’이라는 응답자가 36.8%로 가장 많았다.

A씨는 말했다. “몸이 불편한 사람이 죄를 짓고 왜 교도소까지 와서 다른 사람들을 고생시키냐는 얘기도 많이 들었어요. 장애인 수형자는 이렇게 천대를 받아도 문제제기를 쉽게 하지도 못해요. 목소리를 냈다가는 불이익에 놓이기 때문이죠. 문제를 제기하자 저도 경사로 하나 없는 홍성교도소로 보내졌잖아요. 이런 장애인 수형자에 대한 차별에 대해 법무부는 책임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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