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심주의와 학벌주의가 내 등을 떠밀어 서울로 오게 되었다. 서울에 살게 되며 가장 놀란 건 버스와 지하철에 사람이 너무 많고, 차가 너무 밀린다는 것이었다. ‘지역’ 출신의 보편적인 경험이다. 서울에 부모의 집도, 부모가 얻어 주는 집도 없는 처지로 떠돌면서 가는 데마다 일할 곳을 찾았다. 약 10년 동안 서대문에서, 당산에서, 강남구청에서, 공덕에서 다시 서대문으로 옮겼다. 그때마다 버스정류장과 지하철역의 위치, 그 동네에 다니는 노선에 따라서 이게 같은 서울인가 싶었다. 자기 동네가 서울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답답했다. 그래서 사회학적 관점이 들어간 페미니스트 지리학 연구들을 잘 이해할 수 있었다. 한 국가와 도시의 교통 인프라는 정말로 많은 것을 말해준다.
이따금 지역에 ‘내려갈’ 때면 9호선을 타야 했다. 고속터미널역까지 사람들의 어깨와 어깨 사이에 머리가 끼여 발이 동동 뜨는 기분으로 이동했다(알고 보니 9호선은 이명박 정부의 민간 투자로 탄생했다). 당산과 합정 사이 양화대교를 다니는 5714번 버스도 많이 탔다. 버스는 매일같이 기어다녔다. 구두 신은 발로 서서 가면서 꾸역꾸역 도로를 메운 자동차들을 모두 조그맣게 만들어서 집어 던지는 상상을 했다(알고 보니 오세훈 당시 서울시장이 유람선을 띄우겠다며 다리를 뜯고 있었다).
괴로움의 원인을 모르면 병이 난다. 파 보니 이런 걸 알게 됐다. 전 세계 많은 도시에서 교통체계의 핵심은 걷기와 자전거 타기다. 원래는 생활반경 구석구석을 다니며 이용하는 수단이 먼저고, 나중에 멀리 가는 수단이 고려되는 게 당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거꾸로다. 이동수단에서 자전거가 차지하는 비율은 2% 안팎으로 박살 나 있고, 먼 권역을 잇는 데 적합한 대형 교통수단이 거의 전부다.
이 고통의 핵심은 한강이다. 한강은 1981년 ‘88 서울 올림픽’ 유치를 계기로 전두환 정부가 시작한 한강종합개발사업으로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 현재 평균 1.2㎞ 정도 되는 넓은 폭은 그때 한강을 직선으로 파내면서 만들어진 것이다. 다른 국가에서 도시를 가로지르는 강의 다리는 대부분 사람이 건널 수 있다. 한강은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 도시의 사이즈가 어디에 맞춰져 있는지는 권력자가 무엇을 중요하고 하찮게 생각하는지가 완벽히 반영된 정치적인 문제다. 한강 다리는 자동차로 가면 그러려니 하지만, 인간이 걷다 보면 극단적 선택자로 의심받기 마련이다. 누구나 구조적으로 지하철과 자동차로만 한강을 건너며 살아갈 수밖에 없다.
오세훈 서울시장의 ‘그레이트 한강 프로젝트’가 한창이다(왠지 트럼프가 떠오른다). 한강을 몹시도 사랑하는 오 시장에게 기대하는 것은 한강 다리마다 보행자, 자전거도로를 완비하는 것이다. 10년 전 그는 빨간색 ‘쫄쫄이’를 입고 자전거 전용도로로 출근하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다. 그는 광진구 자양동에 살았고, 광진교는 22개 한강 다리 중 딱 네 곳에 설치된 자전거도로가 있다. 나도 지옥철을 벗어나 자전거로 출근하고 싶다. 올림픽대교 포함 6곳에 2021년까지 자전거 전용도로가 만들어진다고 발표된 후 오늘까지 기약이 없다. 사람 본능이란 게 알고 나면 열받고, 그러면 뒤집고 싶어진다. 그래서 월드컵대교 자전거도로는 언제 생겨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