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껍질, 자갈, 귀신

입력 2023.04.27 03:00

수정 2023.04.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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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로 칼비노의 연작소설 <우주 만화>에는 공룡, 돌, 물고기, 먼지 등 무엇이든 되어 우주에서 일어난 모든 일을 겪었다고 주장하는 크프우프크가 등장한다. 크프우프크라는 이 정체불명의 이상한 존재는 형체가 없는 연체동물이었다가 스스로 껍질을 만들어 조개가 되었던 과정을 자랑스럽게 회상한다. “모든 무분별한 불확실성에서 내 개성을 보호해줄 것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껍질을 만들고 벗기는 행위가 진실한 내가 되어가는 과정이라고? 시각문화 연구자 윤원화는 우스운 허풍처럼 보이는 이야기로부터 껍질을 가진 몸에 대한 근사한 사유를 이끌어낸다. 껍질은 “나와 내가 아닌 것의 경계가 계속 재검토되는 가변적 영역”이다(<껍질 이야기, 또는 미술의 불완점에 관하여> 미디어버스, 2022). 나, 내가 아닌 것, 내가 될 수 있는 것이 끊임없이 경합하면서 미래를 향해 열려있는 공간이 바로 살아있는 몸이라는 것이다.

인아영 문학평론가

인아영 문학평론가

얇고 작은 차이를 만들어내면서 끝없이 분열하고 증식하는 불완전한 물질. 똑같은 형태로 영원히 고정되어 있다기보다는 매순간 미세하게 달라지며 유동하는 물질. 몸이란 원래 그런 것 아니던가? 그러니 몸은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을 어떻게 견디면서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이를테면 고통은 내 몸에서 감각하는 것(통증)이자 내 몸으로 표현되는 것(증상)이지만, 그 자체가 내 몸이라고 할 수는 없으며 언젠가는 내 몸을 통과해 사라져버린다. 그래서 이미상의 단편소설 ‘자갈 선생의 상담일지’(‘릿터’, 2023년 2·3월호)에 등장하는 심리상담사는 내담자가 고통을 몸과 분리된 물질로 사유할 수 있도록 자갈이라는 도구를 쓴다. 자신을 괴롭게 만든 장소에서 돌을 주워와서 그에 관해 말한 뒤 그 돌을 상담실에 두게 하는 것이다. 이른바 ‘돌 줍기-돌 말하기-돌 버리기’의 과정.

김복희의 시집 <스미기에 좋지>(봄날의책, 2022)는 이렇게 온통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과 나누는 유머러스하면서도 쓸쓸하고 귀여우면서도 외로운 대화로 이뤄져 있다. 몸속의 주머니가 찢어졌는지 사람들 앞에서 자갈을 다 흘리고 있는 한 사람. 쏟아진 자갈을 주워 한아름 안고 있는 이 사람은 아무리 무거워도 두 팔을 풀지 않고 버틴다. “나는 죽으려는 게 아닌데. 그냥 죽고 싶다는 말을 하고 싶었는데/ 손이 모자랐다”(‘옮긴 이’) 고통을 끌어안고 요령껏 살아보는 걸까? 한편 “내가 오래 간직했던 돌이/ 나로부터 굴러 나오겠다고” 말하기도 한다. 내 안에 있던 돌이 굴러나와 나를 바라본다면 어떨지 두렵기도 하지만 돌은 씩씩하게 “밖에서 보자”(‘밖에서 보자’)고 말하면서 다른 물질이 돼 나로부터 멀어진다. 그렇게 껍질을 만들고 벗기며 나는 비로소 진실한 내가 돼가는지도 모른다. ‘나이면서도 내가 아닌 것들’만큼 무수한 경계로 유동하는 나를 깊이 이해하는 존재는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일까? 이 시집의 귀신은 인간을 가장 잘 이해한다. 인간이면서도 인간이 아닌 이중적인 상태에 있으니까. 그런데 귀신이 이해하는 인간은 흠결 없고 완벽한 존재가 아니다. 귀신에게 보이는 것은 썩는 인간의 형질, 못 자는 인간, 녹스는 쇠붙이, “잘못 긁어낸 자국 같은/ 얼굴과 한숨”, 그리고 무엇보다 “너 혼자 깊게 안은 너의 몸”(‘귀신같이 알기’). 수많은 돌을 혼자 깊게 끌어안고 두 팔을 풀지 않고 버티는 슬프고 연약한 인간.

그것이야말로 인간의 몸에서 떨어져나온 귀신의 눈이 아니면, 그러면서도 인간의 마음으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귀신의 존재가 아니면 좀처럼 보이지 않는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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