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간 80주년 경향신문

정원도시, 그 이후



완독

경향신문

공유하기

  • 카카오톡

  • 페이스북

  • X

  • 이메일

보기 설정

글자 크기

  • 보통

  • 크게

  • 아주 크게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컬러 모드

  • 라이트

  • 다크

  • 베이지

  • 그린

본문 요약

인공지능 기술로 자동 요약된 내용입니다. 전체 내용을 이해하기 위해 본문과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합니다.
(제공 = 경향신문&NAVER MEDIA API)

내 뉴스플리에 저장

정원도시, 그 이후

입력 2023.04.29 03:00

수정 2023.04.29 03:02

펼치기/접기

전남 순천에서는 국제정원박람회(10월 말까지)가 열리고 있다. 지난 주말, 그곳을 찾았을 때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정원을 즐기고 있었다. 시내를 가로질러 순천만으로 빠져나가는 하천 양쪽의 넓은 땅에는 나무, 풀, 꽃으로 가꾼 아기자기한 정원과 호수, 개울, 온실, 그리고 한국을 비롯해 영국, 프랑스, 스페인, 중국, 일본 등 다양한 국가 정원이 조성됐다. 위치상 도심과 해안을 연결하는 중간지대인 셈이다. 방문객 중에는 연인, 가족, 단체로 온 노장층이 눈에 띄었다. 특히 초로의 여성들은 정원박람회의 주인공이었다. 꽃들 사이에 쪼그려 앉거나 심지어 나란히 엎드려 턱을 괴고 사진을 찍는 장면은 영락없이 10대 소녀 시절로 돌아간 모습이었다. 목표 방문객이 800만명인데 한 달도 안 돼 200만명을 돌파했다는 소식도 들린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인간이 상상하는 낙원은 정원이라 한다. 성경에서 아담과 이브가 살던 곳도 정원이고, 동양의 무릉도원 역시 정원이다. 임사체험을 했던 사람들이 고백하는 천국 역시 꽃이 피고 나비가 날아다니는 정원의 모습이다. 대부분 아파트에 사는 우리에게는 정원보다 공원이 익숙한데 공원이 공공의 장소인 데 비해 정원은 훨씬 오래되고 인간과 가깝고 친숙한 곳이다. 자연에 가해진 인간의 힘은 농토와 정원을 일과 휴식이라는 리듬으로 구성해왔다.

지난 24일 열린 ‘순천국제에코포럼’에서는 흥미로운 발표를 접했다. ‘자연과 사람: 염소, 정원사, 혹은 보호자?’라는 제목으로 영국 신학자인 데이브 브클리스 박사가 들려준 내용이다. 성경에서 사람은 지구를 지키고 가꾸는 청지기로 부름받는다. 그러나 지구를 지배하는 오만한 주인의 자리에 앉은 것이 현재의 모습이다. 가이아 가설의 주창자인 제임스 러브록은 “인간이 지구의 청지기가 되기를 바라기보다 차라리 염소가 정원사로서 성공할 수 있기를 바란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고 한다.

자연에서 인간의 위치에 대한 관념은 지역, 문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다른데, 조지나 메이스는 ‘자연 그 자체’ ‘사람보다 자연’ ‘사람을 위한 자연’ ‘사람과 자연’이라는 네 가지로 정리했다(2014년 사이언스지). ‘자연 그 자체’와 ‘사람보다 자연’은 생태중심적 사고라는 공통점이 있지만, ‘사람보다 자연’은 사람을 지구의 기생충으로 바라보거나 지구의 절반에서 사람이 철수해야 한다는 반구제(半球制) 주장처럼 좀 더 나아간 생각이다.

우리는 ‘사람을 위한 자연’이라는 관념에 젖어 있지만, 지금은 ‘사람과 자연’, 더 정확하게는 ‘자연 속의 사람’으로 가야 한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 그렇다면 ‘자연 속의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

한국의 여느 지방 도시처럼 순천에는 다양한 시대가 중첩돼 공존한다. KTX 순천역에 내리면 원도심이다. 자동차들이 돌아가는 로터리, 낮은 건물마다 자리 잡은 음식점·빵집·카페 등 작은 가게들이 있고, 옛날 건물을 개조한 게스트하우스나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청년몰에서는 도시재생의 노력이 느껴진다. 조금만 더 가면 국밥집이 즐비한 아랫장(시장)인데, 마침 오일장이 열리는 날이라 시골 할머니들이 나물과 채소 등속을 바닥에 잔뜩 펼쳐놓았다.

해변 쪽으로 내려가다가 깔끔하게 정비된 신도심과 박람회가 열리는 국가정원을 만나게 되지만, 곧장 시간이 정지한 듯한 순천만이 나온다. 끝없는 갈대밭이 펼쳐진 갯벌에는 칠게와 짱뚱어가 살고 있고, 용산 전망대에 올라가면 고요한 남해가 펼쳐진다. “해는 이곳에 와서 쉰다”고 시인 곽재구가 노래했던 와온해변도 있다. 갈대밭 인근 순천문학관에서는 <무진기행>을 쓴 소설가 김승옥과 동화 <오세암>의 작가 정채봉의 눈에 비친 순천만과 그들의 문학세계를 소개한다. 차분한 자연에서 태어난 순정한 문학. 그런데 순천이 준 여운 때문에 서울로 돌아와 순천을 검색하자 뜻밖의 뉴스가 나온다. “생태도시, 정원도시의 성공을 바탕으로 5대 핵심전략 사업인 우주산업, 바이오, 디지털, ESG 경영, 웰니스 산업을 발전시키겠다”는 순천시의 야심 찬 청사진이다. ‘자연 속의 사람’이라는 가치가 ‘사람을 위한 자연’과 여전히 갈등하는 상황이다.

순천의 고민은 여느 도시와 비슷할 것이다.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고, 젊은이들을 끌어들여 인구를 늘리고 도시를 발전시키는 것. 그러나 우주산업, 바이오, 디지털보다는 진짜 정원도시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우리는 정원에서 출발해 도시를 만들었고, 이제 두 장소가 만나기 시작했다. 정원 같은 미래 도시는 경제보다는 아름다움이 우선일 것이다. 아름다움은 작고 느리다. 순천의 제1호 국가정원이 그런 본보기가 되면 좋겠다.

  • AD
  • AD
  • AD

연재 레터를 구독하시려면 뉴스레터 수신 동의가 필요합니다. 동의하시겠어요?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콘텐츠 서비스(연재, 이슈, 기자 신규 기사 알림 등)를 메일로 추천 및 안내 받을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레터 구독을 취소하시겠어요?

뉴스레터 수신 동의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안녕하세요.

연재 레터 등록을 위해 회원님의 이메일 주소 인증이 필요합니다.

회원가입시 등록한 이메일 주소입니다. 이메일 주소 변경은 마이페이지에서 가능합니다.
이메일 주소는 회원님 본인의 이메일 주소를 입력합니다. 이메일 주소를 잘못 입력하신 경우, 인증번호가 포함된 메일이 발송되지 않습니다.
뉴스레터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에서 제공하는 뉴스레터, 구독 서비스를 메일로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 원하지 않는 경우 [마이페이지 > 개인정보수정] 에서 언제든 동의를 철회할 수 있습니다.

※ 동의를 거부하실 경우 경향신문의 뉴스레터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지만 회원가입에는 지장이 없음을 알려드립니다.

  • 1이메일 인증
  • 2인증메일 발송

로 인증메일을 발송했습니다. 아래 확인 버튼을 누르면 연재 레터 구독이 완료됩니다.

연재 레터 구독은 로그인 후 이용 가능합니다.
경향신문 홈으로 이동
뉴스레터 구독
닫기

전체 동의는 선택 항목에 대한 동의를 포함하고 있으며, 선택 항목에 대해 동의를 거부해도 서비스 이용이 가능합니다.

보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보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뉴스레터 구독
닫기

닫기
닫기

뉴스레터 구독이 완료되었습니다.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
닫기

개인정보 이용 목적- 뉴스레터 발송 및 CS처리, 공지 안내 등

개인정보 수집 항목- 이메일 주소, 닉네임

개인정보 보유 및 이용기간- 원칙적으로 개인정보 수집 및 이용목적이 달성된 후에 해당정보를 지체없이 파기합니다. 단, 관계법령의 규정에 의하여 보존할 필요가 있는 경우 일정기간 동안 개인정보를 보관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사항은 경향신문 개인정보취급방침을 준수합니다.

닫기
광고성 정보 수신 동의
닫기

경향신문의 새 서비스 소개, 프로모션 이벤트 등을 놓치지 않으시려면 '광고 동의'를 눌러 주세요.

여러분의 관심으로 뉴스레터가 성장하면 뉴욕타임스, 월스트리트저널 등의 매체처럼 좋은 광고가 삽입될 수 있는데요. 이를 위한 '사전 동의'를 받는 것입니다. 많은 응원 부탁드립니다. (광고만 메일로 나가는 일은 '결코' 없습니다.)

닫기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