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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화되지 않는 손실

설거지를 하다 ‘쉬지도 않고 일하던 애가, 전셋집을 구해서 진짜 좋아했는데’라는 소리를 들었다. 전셋집 마련이 꿈이었던 건 나도 마찬가지라 TV로 얼굴을 돌렸다. 전세사기 피해자 사망을 다룬 뉴스였다. 미디어에 출연해 주식과 부동산 투자를 하지 않으면 바보라고 말하는 전문가를 본 적은 많았지만 전셋집을 구해 기뻐하는 사람을 본 적은 없었다. 문제가 된 전세금은 8000만~9000만원. 공시가격 9억원 이상 아파트의 종부세 문제가 ‘생존권’이란 이름으로 몇년 동안 정치쟁점이 되는 동안, 전세금 8000만~9000만원이 누군가의 생사를 결정할 수 있다는 걸 알기 어려웠다. 평범한 사람들의 삶은 배제돼 있다가 사망사고가 터지고 나서야 뉴스나 시사프로그램의 주인공이 된다.

박정훈 배달노동자

박정훈 배달노동자

비밀번호를 누르고 들어갈 수 있는 빌라에 사는 게 소원이었다. 2018년 서울주택도시공사(SH) 대출로 절반, 동거인과 지인에게 빌린 돈 절반을 모아 그 꿈을 이루었다. 보증금 9000만원에 월세 20만원. 강서구 화곡동의 12평짜리 빌라였다. 지하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고 한참을 올라가야 하는 언덕 위의 집이었지만 현관 비밀번호를 누르는 순간 왠지 서울살이에 성공한 것 같았다. 빌라거지라는 말이 있다는 건 나중에 알았다. 상관없었다. 속상한 건 따로 있었다. 집에 근저당이 있었다. 전세가가 매매가와 별 차이가 없었다. 근저당을 조정해 달라고 부탁했는데 집주인이 크게 화를 냈다. 부동산이 중재하려 하자 집주인이 100여채의 집을 소유하고 있다며 자기가 소유한 집 리스트를 보여줬다. 부자 아니면 사기꾼 같았지만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 야속하게도 SH는 SH가 빌려준 돈에 대해서만 보증보험에 가입했다. 사는 내내 보증금 4500만원을 돌려받지 못할까봐 전전긍긍했다. 3년 전 보증금 떼일 일 없는 청년주택에 당첨됐고, 입주하려면 혼인신고서가 필요해 결혼을 했다. 이삿날까지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해 발을 동동 굴렀는데, 극적으로 세입자가 나타나 내 순서에 터지지 않은 폭탄을 넘겨주고 탈출했다.

2008년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는 상환능력 없는 사람들에게 은행이 대출상품과 내집 마련의 꿈을 팔다가 터진 사건이었다. 채무자의 상환 능력이 떨어지자 돈을 빌려준 은행과 금융상품을 만든 투자회사들이 줄줄이 무너졌다. 미국 정부는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퍼부어 기업을 살렸다. 이윤은 사유화하고 손실은 사회화한다는 비판이 나왔다. 어떤 손실은 사회화되지 않는다. 한국은 총부채상환비율(DTI), 주택담보인정비율(LTV) 같은 규제가 있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는 벌어지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한국은 은행이 아니라 세입자의 피 같은 돈을 지렛대 삼아 집을 매매하는 전세가 있다. 집을 매매하는 사람에게 대출을 해주는 건 은행이 아니라 세입자였고, 파산하는 것도 은행이 아닌 세입자다. 은행이 무너지면 국가 문제가 되지만, 세입자가 무너지면 개인 문제가 된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사기범죄 피해를 국가가 떠안는 선례를 남길 수 없다고 했다. 사회화되지 않는 구조적 피해는 사적 죽음의 모습으로 드러난다. 3년 전 내 보증금을 지켜준 세입자는 중소기업대출을 받은 청년이었다. 그와 또 다른 세입자의 안녕을 기도하는 것만으로는 죽음으로 나타나는 한국판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를 막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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