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10일 취임 1년을 맞는다. 윤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건물과 제도를 무너뜨리는 데는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말했다. 12분에 걸쳐 한·일관계부터 부동산·금융시장·마약까지 ‘무너진’ 각 분야를 열거한 뒤엔 “무너진 시스템을 회복하고 성과를 이루기엔 시간이 필요하다”고도 했다. 취임 1년 소회를 전 정부와 야당 책임론으로 대신한 것이다. 정치 경험 없는 검사 출신 ‘윤석열 후보’의 대통령 당선은 정권교체와 새 정치 기대가 배어 있다. 하지만 윤 대통령 국정지지율은 긍정평가 30%대, 부정평가 60%대로 낙제점에 가깝다. 윤 대통령 국정운영에 대한 싸늘한 민심을 방증한다.
윤 대통령은 공정과 상식을 복원하고, “통합의 정치를 하라는 국민의 간절한 호소를 잊지 않겠다”며 취임했다. 그러나 이 약속은 집권 초부터 빗나갔다. 장관 후보자의 잇단 낙마와 검찰 출신 중용은 인사 참사를 낳았고, 대선 6일 만에 전격 발표한 집무실 용산 이전도 높은 반대 여론 속에 강행했다. 윤 대통령을 찍은 MZ세대 8인은 경향신문 인터뷰에서 지지 철회 이유로 “공정과 상식이라는 대선 슬로건을 지키지 않아서”라고 했다. 편 가르기 정치도 노골화했다. 비판 언론을 ‘국익을 훼손하는 가짜뉴스 생산자’로 몰고, 세대·남녀를 갈라치고, 노조를 불온시하는 적대적 노조관이 국정 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독단은 정책 혼선을 불러왔다. 5세 조기 취학·주 69시간 노동 같은 정책들이 졸속 추진되다 중단됐고, 연금·노동·교육으로 정한 3대 개혁은 표류하고 있다.
일방독주로 일관한 국정에선 ‘소통·통합·협치’가 뒷전으로 밀렸다. 출근길 문답은 60여회 만에 중지했고, 야당 대표와는 취임 후 공식 회동을 하지 않았다. “힘으로 상대를 억압하는 반지성주의가 민주주의를 위기에 빠뜨리고 있다”던 말을 스스로 어긴 것이다. 그런데도 윤 대통령은 “거야에 막혀 필요한 제도를 정비하기 어려웠다”고 국정 난맥 원인을 야당 탓으로 돌린다. 대통령 당선 후 의회를 존중하고 야당을 국정운영 동반자로 대하겠다던 말은 공염불이 됐다. 1년 내내 야당은 단독입법하고, 대통령은 거부권 카드로 맞서는 정치 실종이 장기화한 데는 윤 대통령 책임이 크다. 불통·독선과 길을 잃은 협치가 지나온 1년의 냉정한 평가임을 윤 대통령은 직시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이날 “외교안보만큼 큰 변화가 이뤄진 분야도 없다”며 ‘가치 외교’를 성과라고 자평했다. 하지만 “네오콘이 한국에서 환생한 느낌”이라고 한 문정인 교수의 혹평처럼, 한반도를 외교안보 격전장으로 만들었다. 한·미·일 동맹 강화는 신냉전을 일으키고, 미·중 갈등은 경제 위기를 고조시켰고, 일본과는 굴욕 외교로 전락했다는 비판이 엄존한다.
집권 2년차는 구체적인 국정 성과를 요구받는 시기이다. 내년 총선은 윤 대통령 국정을 중간평가하는 장이고, 그 결과에 따라 집권 중·후반기 국정 주도권 향배도 결정된다. 집권 2년이 새로워지려면 윤 대통령 태도부터 달라져야 한다. 다양한 국민 목소리와 비판 여론까지 귀담아 듣고, 야당과는 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로 정치 복원에 앞장서야 한다. 윤 대통령은 전면적 국정쇄신을 요구하며 각계각층에서 줄 잇는 시국선언 의미를 무겁게 받아들여야 한다. ‘통합의 정치’를 약속한 취임사를 다시 꺼내 읽고, 국정운영 기조를 일대 전환하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