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시인사이드 ‘우울증갤러리’에서 활동하던 10대 여중생이 서울 강남구에서 사회관계망서비스(SNS)로 생중계하며 극단적 선택을 한 지 16일로 한 달이 지났다. 이 사건 이후 우울증갤러리가 성폭력, 불법 촬영, 폭행 등 각종 범죄의 온상이라는 증언이 쏟아졌다. 경향신문은 지난 한 달간 여러 피해자들을 만나며 우울증갤러리를 모니터링했다. 그 결과 n번방 등 기존 온라인 성범죄와 다른 특징들이 확인됐다.
성인 남성, 장애인·미성년자·정실질환자 등 약자만 노렸다
자폐성 장애 중 하나인 아스퍼거증후군을 가진 A씨는 지난해 11월11일 우울증갤러리 이용자 B씨에게 강제추행을 당했다. 첫 오프라임 모임에서 A씨가 술에 취하자 B씨는 “집에서 재워 달라”고 요구했다. B씨가 거절 의사를 수차례 밝혔으나 A씨는 B씨의 신체를 강제로 추행했다. A씨는 자신에게 장애가 있다는 사실을 밝힌 상태였다. B씨는 지난 1월 검찰에 송치됐다.
우울증갤러리에서 성 관련 피해를 입은 이들은 미성년자이거나 심한 우울증을 앓는 등 취약한 상태인 경우가 많았다. 미성년자 C씨는 2021년부터 2022년까지 9차례 각기 다른 갤러리 이용자들에게 성폭행을 당했다. C씨는 지난달 23일 기자와 만나 “(가해자들이) 만나서 일단 술을 먹인 뒤 모텔로 데려가 성폭행했다”며 “직원들에게 입 모양으로 도와달라고 한 적도 있었는데 무시당했다”고 했다. 2021년 있었던 우울증갤러리 고정닉 D씨의 성폭행 사건 피해자도 중증 우울증을 앓는 15살 미성년자였다. 경찰에 입건된 ‘신대방팸’ 피해자들도 모두 미성년자로 알려졌다.
가해자들은 피해자보다 나이가 많은 성인 남성이 다수였다. 피해자들은 “성인 남성들이 우울증도 없으면서 미성년자와 성관계할 목적으로 우울증갤러리를 이용한다”고 했다. 20대 남성인 B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우울증이나 정신질환이 없지만 재미로 갤러리 활동을 했다”고 인정하기도 했다. 갤러리를 통해 미성년자와 성관계를 맺은 사람들 중에는 대치동 학원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던 전직 수학 강사도 있었다.
이현숙 탁틴내일 청소년성폭력상담소 대표는 “성인 남성들이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을 노려 연애감정을 느끼게 하는 수법”이라며 “전형적인 그루밍 성범죄”라고 했다. 그루밍 성범죄란 가해자가 피해자와 신뢰 관계를 형성해 심리적으로 지배(그루밍)한 후 성폭력을 가하는 범죄이다. 그루밍 범죄 피해자들은 쉽게 수사기관에 피해 사실을 알리지 못한다.
우울증으로 졸피뎀 처방…마약 광범위하게 사용돼
우울증갤러리에서 일어난 범죄의 또 다른 특징은 마약류가 광범위하게 사용된다는 점이다. 우울증 환자들은 불면증 치료 등에 쓰이는 향정신성의약품인 졸피뎀을 병원에서 처방받을 수 있다. 이들은 처방받은 졸피뎀을 모아놓았다가 술과 섞어 음용하는 ‘술피뎀’을 주로 사용한 것으로 파악됐다. 우울증갤러리에서 확인되는 ‘술피뎀’ 관련 게시물만 200개가 넘는다. 갤러리에선 일부 남성 이용자들이 이를 성범죄에 사용했다는 증언도 나왔다.
C씨는 “갤러리 유저들끼리 졸피뎀을 사고팔기도 했다”면서 “거래가는 정당 1만원에서 1만4000원”이라고 말했다. C씨의 남자친구는 기자에게 코로 흡입할 목적으로 졸피뎀을 가루로 빻은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유통책이 특정되는 일반 마약범죄와 달리 우울증갤러리에선 특정 인물이 마약을 주도적으로 공급하고 있지는 않은 것으로 보인다. 우울증이 있는 이용자들이 각자 약물을 처방받은 뒤, 이를 모아서 복용하는 형태다. 이 때문에 유통책을 검거해 복용자들을 적발하는 기존의 수사 방식으로는 이 갤러리를 매개로 발생하는 마약 범죄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꼭짓점’ 없어 수사 어렵다
n번방 사건에선 조주빈 등 특정인을 주축으로 범죄가 이뤄졌다면, 우울증갤러리의 범죄는 다수의 가해자가 다수의 피해자들을 대상으로 저지르는 범행이 다수이다. ‘신대방팸’ 등 이름이 많이 알려진 이용자만을 겨냥한 수사가 효과적이지 못할 것이라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 이용자는 “가해자도 수백명이고 피해자도 수백명인데 신대방만 수사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냐”며 “무의미한 수사 방식”이라고 했다.
우울증갤러리가 일종의 범죄 플랫폼 역할을 하고 있기 때문에 사이트 자체를 폐쇄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많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상황이다. 경찰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우울증갤러리 폐쇄를 건의했지만, 방심위는 “차단할 만한 상황은 아니다”라고 했다. 디시인사이드 측도 “갤러리 게시물에 대한 저작권은 작성자에게 있는데 갤러리를 폐쇄할 경우 정상적인 이용자들이 본인이 저작권을 가진 게시물을 열람하지 못 하는 피해를 받을 수 있다”며 거부했다.
승재현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사이트 폐쇄가 어렵다면 경찰이 저인망식 수사를 해야 한다”며 “인공지능 등을 이용해 그루밍이 의심되는 게시물을 추출해 단속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