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청장’서 ‘엄포청장’으로···경찰, 윤 정부 들어 ‘180도’ 태세 전환

이홍근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마포구 경찰청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16일 진행한 1박2일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윤희근 경찰청장이 18일 서울 마포구 경찰청에서 민주노총 건설노조가 지난 16일 진행한 1박2일 집회에 대한 입장을 발표한 뒤 기자실을 나서고 있다. 성동훈 기자

문재인 정부에서 경찰청장을 지낸 민갑룡 전 청장은 ‘애플청장’이라 불렸다. 사과를 많이 해서 붙은 별명이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진상조사위원회(진상조사위)는 2019년 용산 참사·쌍용자동차 파업·백남기 농민 물대포 사망 사건 등 7개 사건에 경찰의 과잉진압과 인권침해가 있었다는 결론을 내렸고, 민 청장은 이에 따라 고개를 깊이 숙였다. 4·3 추념식에서도, 이한열 열사 33주기 추모식에서도 민 전 청장은 경찰의 과거 공권력 남용에 대해 사과했다.

국민 앞에 숙였던 고개가 꼿꼿하게 세워지는 데 걸리는 시간은 길지 않았다. 애플청장은 ‘엄포청장’으로 얼굴을 바꿨다. 윤석열 정부 들어 취임한 윤희근 경찰청장은 취임 이후 화물연대 파업, 대우조선해양 하청노동자 파업 등 집회 관련 이슈가 있을 때마다 ‘무관용’이란 엄포를 놓았다. 최근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서울 도심 상경집회을 두고도 “헌법과 법률에 의거해 더욱 엄정하게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전직 경찰청장들이 집회·시위 과잉 진압 등 경찰의 과오를 사과했던 같은 연단에서였다.

공권력 남용 반성·사과하던 경찰

2017년 출범한 경찰청 진상조사위는 2018년 농민 백남기씨의 사망이 경찰의 물대포 살수 때문이라는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쌍용차 파업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의 지시에 따른 위법한 공권력 남용으로 결론 났다. 용산 참사는 경찰 지휘부가 무리한 진압을 강행하다 빚어졌으며, 밀양·청도 송전탑 건설 반대 시위 역시 과도한 공권력 행사로 국민 인권이 침해된 사건으로 꼽혔다.

진상조사위 조사 결과가 발표되자 민 전 청장은 “진상조사 결과, 경찰력은 어떠한 경우에도 남용돼서는 안 되며, 절제된 가운데 행사돼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부분이 확인됐고, 원칙과 기준이 흔들리기도 했으며, 인권에 대한 이해와 존중이 부족했던 점을 인정한다”며 “그로 인해 국민이 생명을 잃거나 다치는 등 고통을 겪었고 경찰관도 희생되는 등 아픔도 있었다”고 사과했다.

민갑룡 경찰청장이 2019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진상조사위 권고 이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해 경찰 인권침해 사건 관련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민갑룡 경찰청장이 2019년 서울 서대문구 미근동 경찰청 대청마루에서 열린 진상조사위 권고 이행계획 보고회에 참석해 경찰 인권침해 사건 관련 사과 인사를 하고 있다. 이상훈 기자

집회·시위 현장의 공권력 남용을 막기 위한 제도적 장치도 마련됐다. 경찰은 같은 해 ‘경찰특공대 운영규칙’을 개정해 특공대 임무에서 집회·시위 진압을 제외했다. 경찰특공대 투입은 ‘총기·폭발물 등이 사용되거나 시설점거 등 일반 경찰력으로는 제지·진압이 현저히 곤란한 경우’에만 허가하도록 규정했다.

대통령 한마디에 ‘180도’ 바뀐 경찰

윤셕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윤셕열 대통령. 대통령실 제공

과거를 뉘우치며 공권력 절제를 약속한 경찰은 정권교체 이후 180도 달라졌다. 지난해 대우조선해양 사내하청노조 파업 당시 윤석열 대통령은 출근길 문답에서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고 했다. 경찰은 곧장 규칙 개정 취지와 정반대로 경찰특공대 투입을 준비했다. 서울경찰청 소속 경찰특공대원들이 파업 현장 투입에 대비해 진압복 정비를 지시받았다는 증언도 나왔다. 논란이 일자 경찰은 파업 현장에 ‘시설 점거’와 ‘위험물 사용’이 있어 특공대 투입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경찰이 스스로 채웠던 안전띠를 3년 만에 푼 것이었다.

건설노조에 대한 전면적인 옥죄기도 궤를 같이한다. 윤 청장은 지난해 11월 건설현장 불법행위 근절을 선언하며 노조에 전방위 압박을 가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 3월 ‘건폭’이라는 신조어를 앞세워 “건설현장의 법치를 바로 세우라”고 했다. 속도전에 돌입한 경찰은 건설 현장 등에서 2863명을 단속해 102명을 검찰에 넘겼다. 고 양회동 건설노조 강원건설지부 3지대장은 노조 탄압에 항의하는 내용의 유서를 남기고 지난 1일 분신했다.

경찰은 민생 정책에서도 과도하게 정권 눈치를 보고 있다는 비판을 받는다. 경찰은 2021년 4월 도시지역 간선도로는 시속 50㎞ 이내, 주택가 등 이면도로는 시속 30㎞ 이내로 통행속도를 제한하는 ‘안전속도 5030’을 도입했다. 경찰은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37개국 중 31개국에서 시행 중인 제도라며 3.8배의 사망자 감소 효과가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지난해 대통령직 인수위원회가 5030 정책에 대해 “비효율적”이라고 비판하자 경찰은 제도를 사실상 폐기하고 지난해 말 도심 제한속도를 시속 50㎞에서 60㎞로 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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