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종·수확기 등 농번기에 국내에 들어오는 ‘외국인 계절노동자’들이 임금을 볼모로 잡힌 채 열악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가인권위원회와 외국인이주·노동운동협의회, 아시아이주포럼은 19일 개최한 ‘계절 이주노동자 해외 조사 결과 발표 및 제도개선 방안 모색 토론회’에서 한국에서 계절노동자로 일한 경험이 있는 4개국 노동자들에 대한 심층인터뷰를 토대로 실태를 공개했다. K콘텐츠로 세계의 상찬을 받는 한국의 ‘추악한 민낯’에 얼굴이 화끈거려진다. 노동자들의 사업장 이탈을 막는다는 이유로 지방자치단체가 ‘현대판 강제노역’에 앞장서고 있는 것도 충격적이다.
대표적인 악습은 임금의 절반 이상을 노동자에게 직접 지급하는 대신 해당국 자치단체가 관리하는 계좌에 강제적립하는 것이다. 중도이탈을 하면 받을 수 없는 ‘귀국보증금’을 두기도 한다. 전북 고창 수박농장에서 일한 네팔인 노동자는 매일 12시간씩 주 6일 일했는데 월급은 200만원에 불과했다. 한 필리핀인은 “귀국 전 통장을 받아보니 처음 보는 누군가가 20만원만 남기고 인출 또는 이체했다”고 했다.
2015년 도입된 계절노동자 제도는 국내 지자체들이 해외 각국 지자체와 협약을 맺어 시행하고 있는데, 올해 상반기에만 전국 124개 지자체에 계절노동자 2만6788명을 배정했다. 지난해보다 2.2배에 달하는 규모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일손이 부족하다. 계절노동자를 받는다고 해도 중도 이탈률이 높다.
이탈률을 낮춰야 법무부로부터 다음해 쿼터를 배정받기 때문에 각 지자체들은 노동조건 개선은 뒷전인 채 인권침해도 불사한다. 이탈률을 낮추려면 이런 현실을 개선하는 것이 정공법이다. 미국은 고용주가 일시 농업노동자 프로그램으로 입국한 노동자에게 교통비, 숙식비 등을 제공하고 최저임금을 약속하도록 한다. 뉴질랜드는 지역 정보부터 업무, 송금 방법, 건강 정보까지 제공해야 한다. 캐나다는 ‘노동시장영향평가서’를 발급받은 사업주만 이주노동자를 고용할 수 있다.
계절노동자 제도가 지속가능하려면 이탈보증금이나 강제적립 같은 강압책 대신 적정 노동과 임금 보장 등 안전한 노동조건을 만들어야 한다. 인구감소 추세가 가팔라지면서 앞으로 더 많은 이주노동자들과 공존해야 할 현실을 감안하면 이주노동자 정책에 근본적인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