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가 윤현종에게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이라는 공연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조금 놀랐다. 바로크 음악은 유럽 땅에서 오페라와 다양한 기악 장르를 꽃피운 시기의 음악인데 ‘남미’라니. 참 낯선 조합이라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그 소식을 전해준 윤현종 또한 한국에서 바로크 음악을 매일같이 연주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신예슬 음악평론가
머나먼 바다 건너, 피아노가 한국 땅에 배를 타고 들어온 것이 120여년 전의 일이었다. 선교사들은 종교와 함께 서양 음악을 전파했고, 내 외할머니의 가족들은 어느 순간 그 음악을 사랑하게 됐으며, 그런 가정에서 자란 엄마의 마음이 내게도 전해지며 나도 서양 음악을 듣고 익히며 자라게 됐다. 나는 이를 ‘서양 음악’ 혹은 ‘유럽 음악’이라 거리를 두고 말하지만 나의 삶에서 이 음악은 내 어머니들의 역사와 맞닿은 것이기도 했다. 베토벤과 나 사이의 무한한 거리, 내게 전해진 어머니들의 마음을 동시에 떠올리며 서양 음악을 내 음악이라 부를지, 타자의 음악이라 부를지를 고민했다.
머나먼 바다 건너, 스페인의 악기와 음악들이 배를 타고 중남미에 도착한 것은 500여년 전의 일이었다. 콜럼버스의 남미 대륙 발견으로부터 시작된 스페인의 식민제국 시대는 유럽의 바로크 음악을 남미에도 전했다. 식민의 역사와 동시에 여러 악기들, 악보들, 그리고 사람들의 음악적 기억 또한 그와 맞물려 퍼져나간 것이다. 그렇게 바다 건너 온 음악은 그 땅에서 시간을 보내며 수많은 음악과 뒤섞였고, 제 나름의 전통을 이뤘다. 남미의 바로크 음악에는 “아메리카 원주민의 음악, 강제로 이주됐던 아프리카인들의 음악, 예수회 수도사들의 종교 음악 등 서로 다른 배경을 지닌 음악들”이 뒤섞여 있었다.
지난 12일, TINC(This is Not a Church)에서 열린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은 바로 그 입체적인 풍경을 보여주는 공연이었다. 테오르보 윤현종과 타악기 설호종, 쳄발로 아렌트 흐로스펠트, 비올라 다 감바 강지연, 바로크 바이올린 이한솔, 소프라노 임소정, 리코더 김규리, 그리고 한국을 방문한 칠레의 바로크 기타 연주자 크리스티안 구티에레스까지. 음악 단체 무지카 엑스 마키나는 서로 다른 환경에서 바로크 음악을 만나온 음악가들을 모아 스페인과 남미의 바로크 음악 중 성악곡과 기악곡을 교대로 연주했다. 들려오는 음악은 바로 즐길 수 있을 정도로 편안하고 익숙했지만, 프로그램 북에는 낯선 단어들이 난무했다. 카나리오스, 판당고, 샤코나 등 전통적인 서유럽 중심의 음악사에서 그리 중요하게 다뤄지지 않았던 스페인 음악들과 란차스, 토나다라 불리는 남미 음악들이 있었다. 꼭 평행우주의 바로크 음악을 만난 기분이었다.
공연 소개글엔 이런 문구가 쓰여 있었다. “그간 유럽 중심의 서양음악사에서 남미의 바로크 음악은 거의 주목받지 못했었지만, 최근 남미에서 발견된 코덱스(Codex·고문서)와 구전되어온 음악을 통해 남미의 바로크 음악이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 이번 프로젝트는 수백년 전 유럽의 음악이 대양을 건너가 새로운 대륙의 음악과 서로 어떻게 영향을 주고받아 현재까지 이어졌는지를 탐구해보는 하나의 시도이기도 합니다.”
그 장면들을 보며 나는 서양 음악과 그 역사의 복잡성을 조금 더 넓게 받아들이게 됐다. 그리고 어느 순간, 내가 좋아하고 향유해온 것이 나의 음악이 아니라고 말할 필요는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 역사를 잊을 순 없겠지만, 그럼에도 다른 땅에 도착한 그 음악을 마음 깊이 좋아할 수 있고, 음악이 다른 토양에서 자라나면서 또 다른 음악가들을 만나 전혀 다른 역사를 만들어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공연이 끝난 뒤에는 아주 작은 해방감이 찾아왔다. 그건 ‘이 음악이 도대체 누구의 음악이냐’에 대한 물음에 이 공연이 ‘나의, 우리의 음악’이라고 아주 산뜻하게 말해주고 있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