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일 셔틀외교 해법, 원폭 피해뿐이어선 안 된다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 마지막 날인 21일, 윤석열 대통령과 기시다 후미오 일본 총리 부부가 한국인 희생자 위령비를 함께 참배했다. 두 정상 부부는 히로시마 평화기념공원 내 위령비 앞에 백합 꽃다발을 헌화한 뒤 묵념했고, 한국인 원폭 피해자 10여명이 그 모습을 지켜봤다. 양국 정상의 공동참배는 처음이고 의미있는 일로 평가한다.

기시다 총리는 G7에서 “핵무기 폐기를 위해 피폭 실상을 세계에 알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그는 지난 16일 각의에선 ‘자료 수집이 어려워’ 외국인 원폭 피해자 규모를 조사하지 않겠다고 결정했다. 정확한 실태조사도 없이 피폭의 실상을 알리겠다는 호소는 그 자체로 모순이고, 윤 대통령도 시정 요구 없이 기시다 총리의 공동참배 제안에 응한 것이다. 이날 “공동참배가 과거사 해결에 낙관적”이라 한 대통령실 평가도 일본 정부의 과거사 인식은 진전이 없는 속에서 사후 면죄부만 줄 수 있는 섣부른 판단이다.

원폭 피해는 강제동원을 덮은 채 해결할 수 없는 사안이다. 2010년 국무총리 소속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회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 조사 보고서는 1945년 히로시마·나가사키의 한국인 피폭자 7만여명 중 절반가량을 ‘강제동원 노무자’로 추정했다. 원폭 피해 문제도 양국 과거사의 핵심 현안인 강제동원 문제와 맞물려 있는 셈이다. 하지만 한·일 정상회담에선 원폭 피해자 실태조사나 배·보상 조치, 강제동원·위안부 피해 사과·보상,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처리나 일본 독도 도발 같은 과거사 문제는 의제로 다루지 않았다.

정부는 12년 만의 한·일 셔틀외교 복원에 만족해선 안 된다. 일본이 강제동원 강제성을 사실상 부인하는데도, 대통령실이 위령비 참배를 “과거사 해결에 대한 실천의 시작”이라고 자화자찬하는 건 앞뒤가 맞지 않고 자중해야 한다.

윤 대통령은 위령비 참배가 또 다른 과거사·오염수 문제의 본질과 해법을 흐릴 수 있다는 지적도 무겁게 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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