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복경 한국해양과학기술원 동해연구소장
바다에서 수면 아래 100m 깊이까지는 광합성이 잘 일어난다. 여기선 수면 밖에서 비치는 햇빛이 닿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보다 깊은 곳에서는 빛이 거의 사라진다. 이 때문에 광합성도 어렵다. 심해에선 지상이나 얕은 바다와는 다른 생태계가 펼쳐진다는 뜻이다.
한국 서해와 남해의 경우 수심이 100m 이내이다. 반면 동해는 수심이 2000m를 넘는 곳도 많다. 이 때문에 동해의 심해 암흑층에서는 아무것도 볼 수가 없다. 인공적인 빛을 발생시키더라도 전달되는 거리는 최대 100m 이내로 한정된다.
하지만 이렇게 암흑인 바다 깊은 곳에서도 많은 해양 생물이 살아가고 있다. 그러면 이런 생물들은 어떻게 주변을 인식하고 서로 소통할까.
열쇠는 소리에 있다. 물은 탄성이 매우 좋아서 소리를 멀리까지 잘 전달하는 특성이 있다. 많은 수중생물은 서로 소리를 내고 소통하면서 환경에 잘 적응하고 있음이 밝혀지고 있다. 고래류는 깊은 바다까지 내려가 아주 낮은 소리를 내는데, 이런 소리는 수백㎞까지 전달되기도 한다. 이처럼 바닷속에서 소리는 수중 생태계에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최근에는 바닷속에서의 소리가 기후변화와 관련이 있다는 연구가 발표된 바 있다. 지구의 기후변화가 수중 소리의 전달력을 증가시킨다는 것이다. 기후변화는 바다의 수온을 높이고 있으며, 이에 따라 수중 소리의 전달 속도 또한 높인다고 분석된다.
기후변화로 인해 극지방을 중심으로 해저지진의 활성 빈도가 증가할 수 있다는 보고도 있다. 지상에 있는 빙붕이 녹으면 지각이 하늘 방향으로 솟아오르는데, 이런 움직임이 지진을 유발한다는 뜻이다. 바닷속에서 산사태가 일어나고, 쓰나미가 발생할 수 있다. 쓰나미의 넓은 피해 범위를 감안하면 한국에서도 기후변화와 지진의 관계에 대해 주목해야 할 때로 보인다.
이 밖에 해저지진이 발생하는 수중의 소리를 분석하면 바다의 수온 변화를 알아낼 수 있다고도 한다. 이처럼 수중 소리는 지구의 기후변화 양상을 반영하는 거울이라 할 수 있다.
국내 연구진이 최근 한국 주변 바닷속에서 발생하는 수중 소리를 10여년간 관측해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 수중 소리가 조석·조류 변화와 매우 밀접한 관계가 있음이 밝혀졌다. 즉 수중 소리의 장기 변화를 보면 한국 주변 바다의 조석과 조류 변화를 예측할 수 있다는 것이다. 생태계에 미치는 지구 기후에 대한 개념은 최근에는 ‘기후적응 시대’로 나아가고 있다. 기후변화 양상을 인간의 과학적인 활동과 노력으로 완전히 바꾸기에는 어렵다고 생각하는 학자들이 늘어나고 있으며, 이제는 기후변화에 적응하는 방법을 연구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는 의미다. 이런 시대에 필요한 해법을 수중 소리에 대한 연구가 제시해 줄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쉽게 들어갈 수 없는 심해를 포함한 바닷속에 지구 생물의 80%가 산다. 이러한 바다 생물권에 관한 동향은 물과 같은 탄성체의 소리를 통해 간접적으로 파악할 수 있게 됐다. 심해 등 수중을 탐사하고 관측해 기후변화와의 관련성을 파악하는 연구에 한국 해양과학자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