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지금 그럼 RE100은 어떻게 대응하실 생각이십니까?
윤석열: 네, 다시 한 번.
이재명: RE100.
윤석열: RE100이 뭐죠?
지난 대선 후보 방송 토론회 때의 한 장면이다. 한 명은 묻고 한 명은 못 알아듣는 이런 상황은 이후 토론 내용인 ‘EU택소노미’에서도 똑같이 반복되었다.
상당수 사람은 ‘알이백’이라 부르는 이 용어에 대해 그때 처음 들었을 것 같다. 우리말로 번역하려는 노력이 너무 부족하다. 영국에 있는 다국적 비영리기구인 클라이밋 그룹은 2014년 재생가능에너지, renewable energy를 100% 사용하는 기업을 만들자는 민간 캠페인을 시작했다. 재생100 정도로 불러도 무방한데, RE100이라는 단축어로 국내에 소개되면서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없게 됐다.
‘알이백’이라고 부르는 이 민간 캠페인은 꽤 성공했고, 점점 더 태풍의 핵이 되어가고 있다. BMW와 볼보 같은 유럽 완성차 업체들이 재생에너지 100%로 만든 제품들을 요구하면서 한국 부품사에 예약 취소가 잇따른다. 애플이 2030년까지 재생100 달성 목표를 세우면서 SK하이닉스, 대상 등 애플과 관련된 기업들도 난감해졌다. 그리고 이런 흐름은 델(Dell)을 비롯해 참여 기업이 점점 늘어나면서 더 커져나가는 모양이다.
한국도 정부 차원에서 아무것도 안 한 것은 아니다. 한국형 RE100을 만들기 위한 시도를 했지만,흐지부지됐다. 아주 냉정하게 보면, 기업은 정부가 관심이 없어 대응이 어렵다며 한발 물러나 있었고, 정부는 재생100은 모른다고 하는 대통령실의 눈치를 보는 동안 1년이 지났다. 자동차 부품 제조업이나 전자부문 그리고 점차적으로 유럽에 수출하는 대부분의 제조업이 이제 곧 이 세계적 흐름의 파장 안으로 들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통상 분규로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지만, 이게 민간 캠페인이고 기업들이 자체 목표를 정해 협력사에 요구하는 형식이라서 WTO가 나서기에 애매하다. 비관세무역장벽이고, 외국 업체라서 차별대우를 하는 게 아니라서 자국민대우 위반에도 해당사항이 없다. 미국 IRA(인플레이션감축법)에 대한 대항으로 프랑스 등 유럽도 같은 방식으로 보조금 차별 도입을 검토하는 중이다. 탄소세 등 좀 더 강도 높은 국가별 환경 규제도 시행을 눈앞에 두고 있다. 맨날 무역으로 먹고사는 국가라고 하면서, 정작 이런 새로운 트렌드에 대해서는 그동안 뭘 준비했나 싶다.
여기까지가 언제나 한발 늦은 한국 기업들의 환경 대응이라, 그런가 보다 했다. 그런데 “RE100은 모른다”고 했던 대통령을 모시는 사람들이 에너지당국과 기업의 목을 비틀어 내놓은 대응은 너무 어이가 없다. RE100에 대응해 CF100, 즉 ‘카본 프리’라는 것을 하겠다는 게 공식 대응이다. 재생에너지는 전 정권이 하던 것이니 기분 나빠 못하겠고, 그 대신 원전으로 확 나가겠다는 게 정부가 나름대로 제시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이다. 왜? 구글이 한다는 게 유일한 명분이다. 구글의 새로운 프로그램은 24시간 내내 탄소를 배출하지 않는 상황을 만들겠다는, 보다 나아간 프로그램이다. 많은 미국 업체가 그렇듯 다양한 노력 중에 원자력도 하나의 수단으로 구글이 원자력을 포함시킨 건 사실인데, 그것을 보고 한국 정부는 “그럼 우리는 원자력만”, 이렇게 구글 프로그램을 왜곡했다. 자, 좋다. 어차피 원전 중독자인 대통령이 재생100을 CF100, 즉 ‘원전100’으로 하겠다고 한들, 누가 말리겠는가. 재판 중인 야당 대표는 그럴 겨를이 없고, 정부의 눈치를 봐야 하는 상공회의소에서 다른 목소리를 내기도 어렵다. 게다가 재생에너지 관련 법까지 고쳐서 재생에너지 관련 예산까지 원전으로 끌어들이려고 하는데, 서슬 시퍼런 원전 중독 대통령을 누가 말리겠는가. 안 그래도 대통령 취임 1주년을 맞아, 정부 방침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사람들은 전부 인사조치하겠다고 발표하지 않았나.
원전 중독자들이 모여 있는 대통령실에 대고 지금 무슨 얘기를 해봐야 그게 들리겠는가. 원전도 안전하고, 원전오염도 안전하고, 오염수가 아니라 ‘처리수’라고 하는 사람들인데! RE100 필요 없고, 한국에서는 전부 CF100으로 하라고 이상한 정부 주도형 프로그램이 힘쓰는 시대다. IRA와 관련해 제일 큰 잘못을 한 것은 결국 현대자동차다. 당사자 문제인 만큼 누구보다 이 법 통과에 대해 신경 썼어야 했다. 외교부나 산업통상자원부가 게을렀다고 해봐야, 결국 손해는 업체만 본다. 이 사건으로 책임지는 공무원은 물론 사과하는 공무원은 한 명도 없었다. RE100도 마찬가지다. 정권은 영원하지 않지만, RE100은 영원하다. 더 강해지면 강해지지, 뒤로 가지는 않는다.
그리고 한마디만 더. 자꾸 구글도 한다는데, 구글은 미국 회사다. 자동차 부품이나 포스코 철강에 환경기준을 들이대는 회사는 유럽 회사들인데, 구글 핑계가 한국 내부에서나 통하지 유럽에서 통하겠는가? CF100은 한국 제조업의 유럽 수출을 망하게 하는 지름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