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모두 같겠어?”
선입견 깨고 다름을 아는 것
웅장해진 화면·주제곡도 눈길

인어 애리얼(핼리 베일리)은 바다 밖 세상을 궁금해 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뮤지컬 실사(라이브 액션)영화 <인어공주>는 편견으로 가득 찬 세상에 화해의 손길을 건넨다. 롭 마셜 감독은 1989년 개봉한 원작 애니메이션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사랑이 많고 진취적인 인어공주를 만들어냈다. 음악과 볼거리는 더욱 화려해졌다.
바다신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의 딸들은 상체는 인간, 하체는 물고기인 인어다. 여섯 언니들은 ‘바다 밖으로 나가지 말라’ ‘인간과 마주치지 말라’는 아버지의 규칙을 잘 따르지만 막내딸 애리얼(핼리 베일리)은 다르다. 그는 인간 세계에 대한 동경과 그곳에 속하고 싶은 갈망을 느낀다.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인간들의 물건을 줍고, 그것들의 쓰임을 상상하며 하루를 보낸다. 물속에 잠긴 난파선은 애리얼의 놀이터가 된다. 애리얼은 부서진 배를 구석구석 들여다본다. 몰래 물 밖으로 나가 인간을 구경하기도 한다. 불이란 뭘까. 다리로 걷는 건, 뛰는 건 어떤 걸까. 춤을 추면 얼마나 좋을까. 하루 종일 바다를 헤엄치는 애리얼에게 수영은 왠지 조금 지겨운 일이다.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 킹)도 바깥세상을 탐험하고 싶다. 그는 카리브해에 있는 한 섬 왕국의 왕자다. 성안에 고립되지 않고 바다를 항해하고 싶다. 그는 바다가 자신을 부르는 것 같다고 말한다. 몰래 에릭의 배를 구경하던 애리얼은 그가 자신과 같은 영혼을 가진 사람이라는 걸 느낀다. 배가 암초에 부딪혀 에릭이 바다에 빠지자 애리얼은 그를 구한다.
이를 알게 된 애리얼의 아버지 트라이튼은 크게 노한다. 딸이 수면 위로 올라간 것도 모자라 인간 남자와 사랑에 빠졌기 때문이다. 그는 애리얼이 수집한 인간의 물건을 모두 부수면서 “다 널 위해서”라고 말한다. 절망한 애리얼은 바다 마녀 울슐라(멀리사 매카시)에게 찾아간다. 울슐라는 애리얼의 목소리를 빼앗고 인간의 다리를 내준다. 사흘 안에 에릭 왕자와 진실한 사랑의 키스를 하면 애리얼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실패하면 울슐라의 소유물이 돼야 한다.

에릭 왕자(조나 하우어 킹)는 섬에 머무르기 보다 바깥 세상으로 나가고 싶어 한다. 그는 생일을 맞아 7개월만에 고향으로 돌아왔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에릭(조나 하우어 킹·왼쪽)과 애리얼(핼리 베일리)는 궁 밖으로 나가 함께 하루를 즐긴다. 애리얼은 사흘 안에 왕자와 키스를 해야 인간이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인어공주>는 동명의 애니메이션을 실사화했다. 한층 화려하고 설득력 있어진 영화는 편견을 뛰어넘는 사랑을 다룬다. 애리얼과 에릭은 자신이 아닌 존재에 대한 거부감이 없다. 그것은 앎에 기반한다. 트라이튼은 아내가 인간에게 죽임을 당한 뒤로 인간은 모두 나쁜 존재라고 규정지어 버린다. 그러나 인간 세계를 훔쳐본 애리얼은 “인간은 무서운 존재가 아니”라며 “인어도 다 다른데, 사람이라고 모두 같겠어?”라고 말한다. 섬나라 사람들은 바다의 신과 인어들을 배를 침몰하게 하는 공포의 존재로 여기지만 왕자는 그것이 비과학적인 미신이며 인어는 아름다운 존재라고 생각한다. 그는 다른 나라에서 인어를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해 들은 적이 있다. 뱃사람들이 인어를 혐오할 때 왕자는 인어를 옹호하는 발언을 한다.
총괄제작자인 제프리 실버는 “이 영화는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른 문화를 어떻게 인식하는지에 대한 것이며 세상에 존재하는 편견과 선입견에 대한 것”이라며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주제다. 영화는 사랑과 이해, 문화의 융합으로 그 문제를 해결한다”고 말했다. 영화는 ‘첫 흑인 인어공주’를 둘러싸고 일어난 잡음들을 돌파하는 주제를 택했다.
자유롭고 싶은 자녀와 그를 보호하고 싶은 부모의 갈등은 또 하나의 주제다. 트라이튼은 자신이 지켜줄 수 없는 세상으로 자꾸만 나아가려는 딸 때문에 고통스러워한다. 최후에 그는 애리얼을 가두는 울타리가 되기보다는, 애리얼이 나아갈 때 뒤에서 불어주는 바람과 같은 존재가 되기로 결심한다.
애리얼은 34년 전 애니메이션보다 주체적이고 능동적이다. 애리얼은 오로지 ‘사랑’ 때문에 움직이는 캐릭터가 아니다. 애리얼은 애니메이션과 다르게 울슐라의 저주를 받고 나서 ‘사흘 안에 에릭과 키스를 해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하지 못한다. 덕분에 에릭의 사랑을 얻는 것보다는 인간 세상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에 더 관심이 많아 보인다. 울슐라와의 대결에서도 애리얼이 활약한다. 결말도 단순한 결혼이 아니다. 세계를 화해시킨 두 사람은 새로운 모험으로 나아간다.
실사영화는 애니메이션보다 여러 면에서 세심하다. 애리얼은 사흘간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무능력하지 않다. 애리얼은 밤하늘의 백양궁(애리스·Aeris)을 가리켜 왕자에게 자신의 이름을 알려준다. ‘7대양’에서 온 트라이튼의 공주들은 모두 다른 인종이다. 전부 자신의 바다에서 가까운 육지 사람들의 얼굴을 하고 있다. 에릭의 왕국은 카리브해 가상의 섬으로 설정됐다. 다양한 인종을 화면에서 만날 수 있다.
바닷속 세계는 웅장하고 화려하다. 최근 스크린에 오른 블록버스터 중 바다를 배경으로 한 <아바타: 물의 길>이나 <블랙팬서: 와칸다 포에버>에 뒤지지 않는다. 수중 장면을 구현하기 위해 ‘드라이 포 웨트(Dry-for-wet)’ 방식을 썼다. 배우들을 와이어에 매단 채, 중력 없이 이동하는 움직임을 만들 수 있는 원형의 ‘튜닝 포크’라는 기계에 넣어 촬영하는 기법이다. 배우들은 튜닝 포크 안에서 자유롭게 회전하고 위아래로 움직이며 물속을 헤엄치는 듯한 연기를 했다.
마셜 감독은 뮤지컬 영화 <시카고>로 아카데미 시상식 6관왕에 오른 이력이 있다. 애니메이션 <인어공주>의 음악을 전담했으며 최근에는 <미녀와 야수> <알라딘> 실사영화의 음악을 만든 앨런 멩컨과 뮤지컬 <해밀턴>으로 토니상 11관왕 기록을 쓴 린마누엘 미란다가 힘을 합쳐 OST를 작업했다. ‘파트 오브 유어 월드(Part of Your World)’ ‘언더 더 시(Under the Sea)’ 등의 명곡은 더욱 풍성해졌다. 에릭의 솔로곡인 ‘와일드 언차티드 워터스(Wild Uncharted Waters)’, 애리얼의 ‘포 더 퍼스트 타임(For the First Time)’, 갈매기 스커틀(아쿼피나)과 게 세바스찬(다비드 디그스)이 부르는 ‘더 스커틀벗(The Schttlebutt)’ 등 총 3곡이 추가됐다.
한국어 더빙에서 그룹 뉴진스의 다니엘이 애리얼을 연기해 화제를 모았다. 러닝타임은 135분으로 원작 애니메이션(82분)보다 50분가량 늘어났다. 24일 개봉.

바다의 신 트라이튼(하비에르 바르뎀)은 아내가 인간에게 살해당한 뒤 인어들에게 인간 세계와 접촉하지 말 것을 명한다. 그는 애리얼(핼리 베일리)가 떠난 뒤 후회한다.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

영화 <인어공주>의 한 장면. 월트디즈니컴퍼니 코리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