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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판결 일주일 만에 “살인죄 공소 철회”

멕시코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여성이 중형을 선고받았다가 논란이 확산한 후 결국 정당방위가 인정돼 기소가 철회됐다.

멕시코 현지 매체 엘우니베르살 등에 따르면 멕시코주 검찰청은 21일(현지시간) 성명에서 “록사나 루이스에 대한 검사의 살인죄 공소제기를 철회한다”며 “향후 절차 검토를 위해 주 법무장관이 자신에게 사건을 넘기도록 검사에게 지시했다”고 밝혔다. 검찰은 “루이스가 정당한 방어를 위해 행동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형사 책임이 면제된다”고 결론내렸다.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시위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록사나 루이스가 ‘내 삶을 지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멕시코 멕시코시티에서 열린 시위에서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혐의로 중형을 선고받은 록사나 루이스가 ‘내 삶을 지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라고 적힌 팻말을 들고 있다. EPA연합뉴스

오악사카 원주민인 20대 여성 루이스는 2021년 5월 멕시코시티 인근 도시인 네사우알코요틀에 있는 자신의 집에서 아는 남성에게 성폭행 당했다. 루이스가 반발하자 성폭행범은 그를 죽이겠다고 협박했고, 몸싸움 과정에서 성폭행범은 머리를 맞고 사망했다.

루이스는 살인죄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법원은 “사람의 목숨을 빼앗은 것은 과잉 방어”라며 1심에서 징역 6년 2개월의 중형을 선고했다. 또 성폭행범의 가족에게 약 28만5000페소(약 2100만원)의 배상금을 지불하도록 했다.

판결이 내려진 후 루이스의 변호인 측은 “사건이 발생한 맥락이 고려되지 않았다”며 “이 판결이 유지되면 성폭행을 당해도 피해자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나쁜 선례가 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또 성폭행 확인 검사를 40시간이 지난 뒤에야 하고, 심리 상담도 제공되지 않는 등 초기 수사 과정에서 성폭행 피해 사실관계를 제대로 파악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멕시코시티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록사나 루이스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멕시코시티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혐의로 실형을 선고받은 록사나 루이스가 시위에 참여하고 있다. EPA 연합뉴스

자신을 방어하는 과정에서 성폭행범을 살해한 것에 중형이 선고되자 멕시코 내에서는 물론 해외에서도 관련 보도가 쏟아지며 큰 논란이 일었다.

루이스는 “사법부의 이번 판결은 여성들이 범죄를 당할 경우 죽거나 감옥에 가는 두 개의 선택지 밖에 없다는 메시지”이라며 “내 생명을 지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기 때문에 나는 정의를 위해 계속해서 싸울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임시 석방될 때까지 9개월가량 구금돼야 했다.

루이스의 1심 판결에 분노한 시민들은 “내 생명을 지키는 것은 범죄가 아니다” “우리는 정의를 원한다”고 외치며 거리를 행진하는 집회를 열었다.

여성 단체들은 이 판결이 젠더폭력과 페미사이드가 높은 멕시코에서 가해자를 보호하고, 성폭력 생존자를 범죄로 규정하고 있다고 분노했다. 멕시코 정부 자료에 따르면 멕시코 여성의 거의 절반이 일생동안 성폭력을 경험했고, 지난해 멕시코에서 3754명의 여성들이 살해됐다.

논란이 확산하자 안드레스 마누엘 로페스 오브라도르 멕시코 대통령은 루이스를 사면하겠다고 밝혔지만, 변호인 측은 사면이 루이스가 범죄를 저질렀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라며 완전 무죄를 주장했다.

결국 지난 15일 1심이 선고된 지 일주일여 만에 검찰은 기존의 입장을 번복해 루이스의 행동을 정당 방위로 인정했다. 검찰은 루이스에 대한 비상 형사구제에 들어갈 전망이다.

변호인 측은 이번 사건으로 다른 젠더 기반 폭력 사건이 더 철저하게 조사되고 더 깊이 민감하게 다루어지는 선례가 되기를 바란다고 밝혔다.

▼최서은 기자 cielo@khan.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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