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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위기의 우울과 희망

입력 2023.05.27 03:00

수정 2023.05.27 03: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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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윤정 전환연구자

작은 대화모임에서 한 분이 기후위기에 관심을 갖고 공부하기 시작하면서 불면증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평생 여성운동가로 살아온 그분은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일할 때는 투지가 생겼는데 기후위기는 현실을 알고 숫자를 들여다볼수록 무력감을 준다고 했다. 마침 그 자리에 생태심리학 전문가도 있었기에 기후우울이라는 진단이 나왔다. 우울은 잠을 못 자거나 의욕이 떨어지는 형태로도, 마음이 조급하거나 쉬지 않고 무언가 계속하는 형태로도 나타난다는 것이었다. 이런 이야기를 나눈 모임의 참가자 대부분이 중장년 여성이었고 우리는 젊은 세대가 주로 겪는다는 기후우울에 전염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한윤정 전환연구자

한윤정 전환연구자

지난달 초 국가 탄소중립·녹색성장 기본계획(2023~2042)이 나온 이후 기후를 걱정하는 사람들은 무력감에 빠졌다. 파리기후협약에 따라 국가별 감축 목표를 정하는 등 사회적 인식이 바뀌던 시기(2021년)에 제정된 기본법에 따라 처음 나온 로드맵이다. 기본법 자체도 녹색성장을 내세워 비판이 많았지만, 기본계획은 알맹이가 달라졌다. 산업부문 감축량을 14.5%에서 11.5%로 줄여주고, 현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률은 25%로 하면서 다음 정부에 75%를 넘겼으며,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은 30.2%에서 21.5%로 낮춘 대신 원전 비중은 23.4%에서 32.4%로 높였다. 이어 “탈원전, 이념적 환경정책에 매몰돼 새 국정 기조를 맞추지 않으면 과감한 인사 조치를 하라”는 윤석열 대통령의 지시가 나왔다. 그러니 후쿠시마 방류수 허용 움직임은 당연한 일이다. 방류수의 안전을 주장해야 국내에서 원자력을 늘릴 명분이 생긴다.

희망은 없을까? 그렇지 않다. 그 한 사례가 기후소송에서의 잇단 승리이다. 현재 진행 중인 기후소송은 6건이다. 기본법이 규정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국민의 기본권, 특히 미래세대의 생존권 보호에 미흡하다는 내용으로 헌법재판소에 제기된 헌법소원심판이 3건(2020년 청소년 기후소송, 2021년 진보정당과 시민단체 기후소송, 2022년 아기 기후소송)이고, 2021년 기후활동가들의 직접행동으로 인한 형사소송이 3건(가덕도 신공항 추진에 반발해 더불어민주당사 진입, 포스코의 수소환원제철 국제포럼장에서 성명서 낭독, 두산중공업 본사 론사인에 녹색 페인트 투척)이다. 헌법재판소는 길게는 3년간 판단을 미루고 있지만, 3건의 형사소송은 전향적 판결이 나왔다. 청년활동가 2명에게 1840만원의 손해배상을 청구한 두산중공업의 청구는 기각됐고, 더불어민주당사, 포스코 사건 역시 목적의 정당성을 인정하며 기소보다 낮은 벌금형이 선고됐다. 법과 양심에 따라 판결하는 법원은 행정부보다 낫다. (현 정부의 폭주를 막기 위해 헌법재판소의 결단을 기대한다!)

역설적으로 시간은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만든다. 정해진 시간에 못 줄이면 변곡점을 넘는다는 게 시간이 주는 두려움 내지 무력감이지만, 거꾸로 시간은 변화를 만든다. 그레타 툰베리의 기후우울에 전염돼 거리로 나섰던 청소년들은 청년으로 성장했다. 독립운동이나 민주화운동에 비하면 별거 아니라고 할지 몰라도, 스펙을 포기한 채 ‘전과자’가 된 기후활동가들이 성숙해지면서 더 장기적인 안목으로 미래를 모색하는 모습 역시 뚜렷하다. 부모와 조부모 세대인 중장년의 가슴앓이도 시작됐다.

마음을 넘어 영성이 등장하는 기미 역시 느껴진다. 인공지능과 우주여행 시대에 웬 영성이냐고 할지 모르지만 영성이 분명하다. 영성은 정의하기 어려운 것으로 유명한데(중첩되지 않는 영성의 27가지 정의가 있다고 한다) 그 공통적인 요소는 더 넓은 경험의 영역을 만들고 삶의 깊은 가치와 의미를 추구하며 인간의 전망을 넓히는 것이다. 동물의 슬픔을 알아채는 이들, 쓰레기로 버려진 식물을 구조하고 팔다리가 잘린 가로수를 지키는 이들은 비인간 존재들과 소통한다는 점에서 분명 영성을 가진다. ‘지구는 자기조절을 하는 가이아’ ‘인간은 지구의 마음’이라는 말들이 자연스레 오가는 것 역시 영성의 증거라 여겨진다.

처음 소개한 대화는 결국 희망으로 마무리됐다. 기후위기가 처음 의제가 된 30년 전 예상대로라면 인류는 지금 멸망했어야 한다. 그런데 생각만큼 나쁘지는 않다. 지구의 자기조절 덕분일 수도, 인간의 영성 때문일 수도 있다. 그래서 희망이 있다. 희망은 목표를 바라보면 절대 나오지 않는다. 높은 산을 오를 때 정상을 바라보면 절망뿐이다. 바로 다음 발자국을 떼어놓을 때 희망이 생긴다. 작은 힘이라도 보태겠다는 마음으로 조금씩 관심을 갖고 실천하는 이들은 분명 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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