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을 수 있었던’ 죽음···교제폭력은 왜 ‘입법 사각지대’가 됐나

강은 기자

가해자가 합의 빌미로 2차 범죄 저지르게하는

반의사불벌죄, 스토킹처벌법 ‘독소조항’ 지목

법안 5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사위 문턱 못 넘어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지난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권도현 기자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직후 연인을 살해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김모씨가 지난 28일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 양천구 서울남부지법으로 들어오고 있다. 권도현 기자

서울 금천구에서 교제폭력으로 경찰 조사를 받은 30대 남성이 조사 직후 상대 여성을 살해하는 사건이 발생한 이후 교제폭력의 입법공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대중의 이목이 쏠리는 젠더폭력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국회에서 ‘반짝’ 법안이 발의됐다가도 제대로 논의되지 않은 채 사장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법 규정의 사각지대에서 ‘막을 수 있던’ 죽음이 반복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29일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을 보면,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인 교제폭력 방지 법안은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먼저 기존 가정폭력방지법의 적용 범위를 교제폭력까지 확대하는 법안이다. 더불어민주당 권인숙·박광온 의원이 2021년 1월과 3월 각각 대표발의한 ‘가정폭력방지법 일부개정안’이 이에 해당한다. 아예 교제폭력을 별도의 영역으로 두자는 법안도 있다. 김미애 국민의힘 의원이 지난해 7월 발의한 ‘데이트폭력범죄의 처벌 및 피해자보호 등에 관한 법률안’이 그것이다.

두 부류의 법안 모두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교제폭력 피해자들도 가해자 접근금지, 피해자 신변조치 등의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게 하자는 취지에서 발의됐다. 가정폭력의 경우 피해자가 보복 범죄 등에 노출될 위험성이 클 때에는 피해자 동의를 받지 않고도 분리·보호조치 하는 것도 가능한데 이런 방식을 교제폭력에도 확대·적용하자는 것이다.

문제는 해당 법안들이 발의될 때는 관심을 끌다가도 국회 상임위원회에서 멈춰 서 있다는 점이다. 각 법안의 검토보고서를 살펴보면 ‘교제 관계 범위의 모호성’ 등이 우려 지점으로 언급돼 있긴 하지만, 상임위원회나 법안소위 등에서 이런 고려사항들을 면밀하게 검토된 경우는 매우 드물다. 이런저런 사건들로 사회가 떠들썩해지면 법안이 주목받다가 관심이 식어갈 때쯤이면 해당 법안의 통과 여부에는 크게 관심을 기울이는 의원들이 드물다는 방증이다.

지난해 ‘신당역 스토킹 살인’ 사건 이후 논의가 활발하게 진행된 스토킹 처벌법마저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가해자 처벌 강화를 골자로 하는 스토킹 처벌법 개정안은 법무부가 지난해 9월 ‘신당역 스토킹 살인사건’ 이후 입법예고 한 법안으로, ‘반의사불벌죄 폐지’ 등이 담겼다. 피해자 의사에 반해 가해자를 처벌할 수 없도록 하는 반의사불벌죄는 가해자가 합의를 빌미로 2차 범죄를 저지르게 하는 스토킹처벌법의 독소조항으로 지목돼왔다. 그런데 이 법안은 5월 임시국회에서도 법제사법위원회 문턱을 넘지 못했다. 국회 법사위 법안심사1소위는 지난 22일 이 법안을 본회의 상정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부처 간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는 게 주된 사유인데, 온라인스토킹 행위 유형을 법안에 추가하고 피의자에 대한 잠정조치로 위치추적 전자장치를 부착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을 두고서 법무부와 법원행정처의 논리가 맞선 것으로 전해졌다.

윤정숙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최근 들어 교제폭력, 스토킹범죄 등이 과거보다 많이 주목받고 있긴 하지만 우리나라는 젠더폭력 입법 대응이 상당히 더딘 편”이라며 “교제폭력을 가정폭력처벌법에 흡수할 것이냐 별도의 법을 만들 것이냐를 두고 논쟁할 수는 있으나 어떤 방식이든 빠르게 통과시키고 공백을 막는 게 중요하다”고 했다.

젠더폭력 법안이 ‘땜질식’으로 제·개정되는 현실이 문제라는 비판도 나온다. 송란희 한국여성의전화 사무처장은 “지금까지는 젠더폭력들이 왜 일어나는지 구조적 원인에 대한 생각을 하지 못한 채 성폭력, 가정폭력, 스토킹범죄 순으로 개별 입법이 이뤄졌다”며 “국가가 친밀한 관계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공적 영역에서 다루려 하지 않는 건 지금도 마찬가지”라고 지적했다.

송 사무처장은 이어 “각종 젠더폭력 문제를 포괄적으로 다뤄야 한다는 취지로 지난 정부에서 여성폭력방지기본법이 만들어졌으나 ‘젠더폭력은 국가책임’이라는 선언에 그칠 뿐 수사기관에 피해자 보호의 책임을 물을 수 있는 구체적 근거는 되지 못하고 있다”면서 “당장 교제폭력에 대한 개별입법이 어렵다면 기본법을 실효성 있게 만드는 것부터 시작할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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