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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개혁에 필요한 건 선거제도만이 아니다

입력 2023.05.30 03:00

수정 2023.05.30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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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에는 여러 지역에서 시민들을 만났다. 기후위기시대 시민의 역할을 논하는 자리부터 시민권, 청소년 정치학교까지 다양한 주제로 다양한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눴다. 주제는 각기 달랐지만 토론과 뒤풀이 시간에는 어김없이 현실 정치에 대한 시민들의 실망감과 무기력감이 토로됐다. 정치의 변화를 기다리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시민들은 지쳐가고 있다.

이미 법정시한 넘긴 선거구 획정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하승우 이후연구소 소장

공직선거법에 따르면 국회는 선거일 13개월 전에 선거구획정안을 만들어야 한다. 이를 위해 2022년 8월부터 국회에 정치개혁특별위원회가 구성돼 활동했지만 이미 법정시한을 넘겼다. 이번이 특별한 경우도 아니다. 지난 20대·21대 총선 때도 국회가 법정기한을 지키지 않았으니.

그래도 예전보다는 상황이 좋다. 2019년의 선거제도 논의가 여야 간의 폭력까지 불렀다면, 이번에는 정개특위가 세 가지 안의 결의안에 합의했고, 19년 만에 열린 국회 전원위원회가 이 안을 논의했다.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 “비례대표를 없애자”는 헛된 발언도 있었지만 비례대표를 늘리는 방향으로 선거제도를 바꿔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다. 인구수로 선거구를 획정하는 방식이 비수도권의 대표성을 반영하지 못한다는 지적도 있었다.

그러나 언제나 국회의원 정수가 걸림돌이다. 국회의원 정수를 바꾸지 않고 비례대표 의석을 늘리려면 누군가의 지역구를 줄일 수밖에 없으니 적절한 합의가 어렵다. 국회와 정치에 대해 시민들이 가진 불만도 정수를 늘리지 못하는 명분이 된다. 이런 어려움을 의식해서인지 국회는 시민 469명이 참여한 공론조사를 실시했다.

참여한 시민들이 처음에는 비례대표 확대에 부정적이었지만 토론 후에는 찬성이 27%에서 70%로 늘어났다. 그리고 토론 전에는 국회의원 정수를 줄이자는 의견이 65%로 많았지만 토론 후에는 37%로 줄었고, 정수를 늘리자는 의견이 13%에서 33%로 늘어났다. 다만 현행 300석을 유지하자는 의견도 29%라서 축소-증가-유지의 비율이 팽팽하다. 공론조사로도 비례대표 의석을 확대할 묘수는 나오지 않았다.

이미 국회의원들이 선거준비에 들어간 만큼 제도를 크게 바꾸는 방안일수록 동의를 받기가 어려울 것이다. 마지노선인 10월 전에라도 합의가 이루어지면 좋겠지만 그때 이루어진 합의는 과연 어느 정도의 변화를 담을 수 있을까? 사실 합의가 이루어져도 농촌에 사는 사람들의 속은 여전히 답답하다. 대도시에는 중대선거구제, 농어촌에는 소선거구제를 적용하는 방안은 개혁일까, 차별일까?

지방자치제도와 지방의회가 있음에도,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국회의원의 역할이어야 할까? 다양한 계층과 지역을 대표하는 것이 비례대표제라지만, 정원이 47명에서 100명으로 늘어난들 그 자리가 농민에게 올지 모르겠다. 노동조합 같은 상시조직이 없는 농민에게는 정치적인 대의가 매우 필요하고 중요한데, 그 자리에 갈 통로는 더 좁다.

지역·정당 허용 등 개혁과제는 방치

답답함은 또 있다. 애초에 정개특위는 선거제도만이 아니라 정치관계법을 폭넓게 다루겠다고 했다. 유권자의 알권리보다 선거운동 규제에 초점을 맞춰온 공직선거법의 일부 조항들은 이미 헌법불합치 판결을 받았고, 시민들의 정치적 효능감을 높여줄 다양한 고민들이 필요하다.

공직선거법은 만 18세 미만 미성년자의 선거운동을 금지하고 있는데, 정당에 가입한 만 16세 이상의 당원(법정 대리인 동의)은 어떻게 선거운동에 참여해야 할까? 자기 돈으로 제작한 홍보물이나 인쇄물을 활용하는 것이 정치적 표현의 자유로 허용된다면, 경제적으로 넉넉한 사람들의 자유가 과잉대표되지 않을까? 특히 다양한 정치세력들이 연합해서 거대 양당에 대응할 수 있도록 지역당, 복수정당이 허용되고, 그들만의 리그라 불리는 선거 외의 정치를 활성화할 방법들에 대한 고민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러나 지난 3월22일에 결의안이 의결된 뒤 한참 후인 5월9일에 열린 정개특위 회의록을 살펴보면 다른 과제들도 빨리 다뤄야 한다고 얘기한 건 김영배 의원뿐이다. 지친 시민들을 다독일 방법은 자신의 기득권을 내려놓는 더욱더 근본적인 정치개혁이고, 그때를 놓치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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