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한상혁 방통위원장 조기 면직, 방송 장악 칼 빼드나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30일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안 재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기자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이 30일 정부과천청사를 나서며 윤석열 대통령의 면직안 재가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있다. 김창길기자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문재인 정부에서 임명된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을 면직했다. 대통령실은 한 위원장이 2020년 TV조선 재승인 심사 과정에서 점수를 고의로 낮추는 데 관여한 혐의로 검찰에 기소된 것과 관련, “본인의 중대 범죄로 정상적인 직무 수행이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면직 사유를 밝혔다. 오는 7월에 임기가 끝나는 국무위원을 검찰 기소만으로 조기 면직한 것은 방통위 독립성을 명백히 훼손한 처사이다.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

윤석열 정부는 지난해 출범 직후부터 한 위원장 축출 작업에 나섰다. 국무회의 참석 대상에서 배제시켜 ‘나가라’고 압박했지만 한 위원장은 자진 사퇴를 거부했다. 그러자 사정기관이 총동원됐다. 감사원이 ‘종편 재승인 심사 점수 조작 의혹’이라는 감사 결과를 내놓자, 검찰은 전방위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법원은 지난 3월 검찰이 청구한 구속영장을 “주요 혐의에 대해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검찰이 혐의를 제대로 소명하지 못했는데도, 면직 방침을 세운 정부는 개의치 않았다. 윤 대통령은 인사혁신처가 지난 23일 요식 절차로 진행한 한 위원장 청문 후 면직을 제청하자 재가했다. 원하는 그림을 그려놓고, 속전속결로 짜맞추기한 것과 다름없다.

협의제 기구인 방통위의 독립적 운영은 법으로 보장돼 있다. 방송 독립성과 직결돼 있기 때문이다. 검찰 기소만으로 면직한 것은 법 취지에 위배되고, 헌법에 규정된 무죄추정 원칙도 무시됐다. 이러고도 윤 대통령이 법치를 운운할 수 있는가. 이명박 정부 시절 군사기밀 문건을 무단 반출한 혐의로 2심에서 유죄 판결을 받은 김태효 국가안보실 1차장을 대통령실에 중용한 것과 180도 다른 잣대 아닌가.

정부가 집요하게 한 위원장을 몰아내려 한 것은 방송장악 의도를 빼놓고 설명하기 어렵다. 방통위는 KBS·방송문화진흥회(MBC)·EBS의 이사 추천·임명 권한을 갖고 있다. 방통위 상임위원은 대통령 몫 2명, 여당 몫 1명, 야당 몫 2명 등 5명이다. 현재 여당 몫 김효재 상임위원이 있고, 윤 대통령은 지난 3일 이상인 상임위원을 임명했다. 대통령실은 더불어민주당이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은 정치 편향성 등을 들어 임명하지 않겠다고 한다. 위원장이 새로 임명되면, 방통위는 여권 3명·야당 1명이 된다. 내년 4월 총선을 앞두고 공영방송의 ‘문제적 인사들’을 해임하고 친정부 인사들로 구성하는 칼을 빼들려는 것인가. 임기가 두 달 남은 한 위원장을 면직한 것은 ‘공영방송 장악 시간표’에 맞추려는 것 아닌지 의심케 한다.

윤석열 정부에서 언론자유는 퇴행하고 있다. 국경없는기자회가 지난 3일 발표한 세계 언론자유지수에서 한국이 1년 만에 47위로 네 계단 하락한 것은 하나의 지표일 뿐이다. 공영방송 장악 시도는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다. 방송을 통치수단으로 삼아 길들이고, 여론을 조작하고, 방송 독립성을 훼손하는 것은 어떤 정부에서도 정당화될 수 없다. 단연코, 한 위원장 면직은 윤 대통령의 흑역사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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