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재의요구권(거부권)을 행사한 간호법 제정안이 30일 국회에서 폐기됐다. 지난달 27일 더불어민주당 주도로 본회의를 통과한 지 한 달 만이다. 이날 재투표에서는 재석 의원 289명 중 찬성 178명, 반대 107명, 무효 4명으로 가결 요건(과반 출석, 3분의 2 찬성)을 채우지 못했다. 의료현장의 극심한 갈등만 남긴 채 법 추진 논의가 원점으로 돌아간 것이다. 이 사태를 부른 여야의 통렬한 자성을 촉구한다.
한 달간의 여야 대치를 보면, 간호법 폐기는 예견된 수순이었다. ‘정치 실종’이 좌초시킨 것이다. 간호법은 여야의 대선 약속이었고, 윤석열 정부 집권 후 국민의힘 일부 의원들도 법안 발의에 참여할 정도로 추진 분위기가 무르익었다. 그러나 의사들의 반대로 갈등이 심화하자, 여당은 간호법이 ‘의료체계 붕괴법’이라며 돌아섰다. 윤 대통령도 집권 후 양곡관리법에 이어 두번째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 입법권을 무력화하고 의료현장의 혼란을 키웠다. 정부·여당은 뒤늦게 간호법을 간호사 처우개선법으로 바꾸고 ‘지역사회·의료기관’ 문구 삭제, 간호조무사 학력 제한 폐지 등 중재안을 내놓았다. 의사단체 요구대로 간호사 업무 범위는 그대로 둔 채 처우개선만 강조한 누더기 수정안을 내민 것이다. 대선 약속을 뒤집고 중재·절충도 실패한 집권여당의 무능과 무책임을 여실히 드러냈다.
대한간호협회는 이날 법안 폐기에 공개 반발하며 “21대 국회 임기 만료 전 간호법을 재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의료현장의 갈등과 대립이 더욱 격화될 수 있어 우려스럽다. 민주당도 간호법이 고령화사회에 대비한 민생법안임을 직시하고, 간호사 개업같이 애당초 의료법상 불허되는 내용에 대한 오해·갈등은 더욱 분명히 바로잡을 필요가 있다. 의료 직역 간 제2의 충돌을 막는 일이 여야 몫으로 남았다.
고령 인구가 늘어나고 만성질환자가 증가하는 현실에서 간호·돌봄 수요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여 있는 사람들을 지원하기 위한 간호서비스도 확대돼야 한다.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병원에 가지 못하는 노인장기요양보험 등급 환자가 2021년 기준 95만명을 웃돌았다는 통계가 이 필요성을 방증한다. 여야는 다시 간호·돌봄 서비스를 확대하는 법안 마련에 머리를 맞대고 진지하게 논의하길 바란다. 무엇보다 ‘환자 중심 의료와 국민 건강권’이 우선이라는 인식부터 공감대를 모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