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 때처럼…여권, 총선 앞두고 ‘방송계 물갈이’ 시동

정대연 기자

한상혁 면직, 여권 인물로 공영방송 경영진 바꾸는 ‘첫 관문’

정연주 방심위원장·김의철 KBS 사장에도 노골적 사퇴 압박

이명박 정부 방송 장악과 흡사…‘언론 자유 암흑기’ 재현 우려

<b>방통위 떠나며</b>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30일 한 위원장이 퇴근길에 정부과천청사 방통위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방통위 떠나며 한상혁 방송통신위원장에 대한 면직안을 윤석열 대통령이 재가한 30일 한 위원장이 퇴근길에 정부과천청사 방통위를 나서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김창길 기자 cut@kyunghyang.com

윤석열 대통령이 30일 한상혁 방송통신위원회(방통위) 위원장 면직안을 재가하자 내년 총선 전 방송을 장악하기 위한 시나리오를 본격적으로 가동하기 시작했다는 해석이 나온다. KBS, MBC 등 공영방송을 장악하는 과정에서 언론 자유 침해 논란을 빚었던 이명박 정부 전철을 밟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여권은 지난해 5월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부터 문재인 정부 때 임명된 기관장들에 대한 사퇴를 줄기차게 압박해왔다. 핵심 타깃은 한 위원장이었다.

윤 대통령은 취임 후 한 차례도 한 위원장을 국무회의에 부르지 않았다. 그럼에도 한 위원장은 임기를 끝까지 마치겠다며 버텼다. 그러자 윤석열 정부는 한 위원장 사퇴를 노골적으로 압박했다. 앞서 서울북부지검 형사5부는 지난 3월 TV조선 재승인 점수조작 관여 혐의로 한 위원장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했으나 서울북부지법 이창열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혐의에 다툼의 여지가 있다”며 기각했다. 그러자 검찰은 지난 2일 한 위원장을 불구속 기소했다. 인사혁신처는 그 기소를 근거로 면직을 건의했고 결국 대통령의 재가 절차로 이어졌다. 검찰이 명확한 혐의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정치적 목적으로 무리하게 수사를 진행했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방통위에 대한 감사원 감사, 국무조정실 감찰도 이뤄졌다. 감사원은 보수단체 등의 ‘국민감사청구’를 명분으로 감사 기간을 세 차례나 연장해가며 KBS에 대한 대대적인 감사를 벌였지만 아무런 위법사실을 확인하지 못했다. 감사원이 또다시 보수단체의 감사청구를 이유로 MBC 대주주인 방송문화진흥회(방문진)에 대한 감사를 벌이면서 MBC는 “정치적 감사”라며 반발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더불어민주당이 방통위 상임위원으로 추천한 최민희 전 의원 임명을 두 달째 거부하고 있다. 방통위의 수적 우위를 점하기 위한 것이라고 야당은 지적한다. 한 위원장 면직 전까지 방통위(상임위원 5명으로 구성)는 여권 2명(김효재·이상인), 야권 2명(한상혁·김현) 구도였다.

방통위는 KBS·EBS와 MBC 대주주인 방문진 이사를 추천·임명하는 권한을 갖고 있다. 방송사업자 인허가 권한도 방통위에 있다. 정부는 한전KDN과 한국마사회가 소유한 YTN 지분 매각을 추진 중인데, 이 또한 방통위의 최대주주 적격 심사를 받아야 한다. 방통위원장 교체는 내년 4월 총선 전까지 공영방송 경영진을 여권 성향 인물들로 바꾸기 위한 첫 관문인 셈이다.

한국기자협회와 방송기자협회 등은 여권의 집요한 한 위원장 퇴출 시도에 대해 “내년 총선을 앞두고 정부·여당에 유리한 언론 환경을 조성하려는 다분히 정치적인 의도가 담겨 있다”고 비판해왔다.

정권 차원의 압력에 시달리는 것은 방통위뿐만이 아니다. 여권은 정연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방심위) 위원장, 김의철 KBS 사장 등 사퇴를 공공연히 주장한다. 수신료 분리징수 문제로도 KBS에 압력을 행사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최근 KBS·MBC 라디오 패널 구성이 편향적이라며 방심위 심의를 신청했다.

언론계에서는 윤석열 정부의 방송 장악 움직임이 이명박 정부 때와 흡사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명박 당시 대통령은 자신의 멘토인 최시중씨를 방통위원장에 임명했고, KBS·MBC·YTN 사장에 자신의 측근들을 앉혔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 등이 거세게 반발했고, 대대적인 해직과 징계 등이 이뤄지는 등 언론 자유의 암흑기로 불렸다. 정연주 당시 KBS 사장은 2008년 검찰 수사와 감사원 감사에 시달린 끝에 해임됐는데, 2012년 결국 대법원에서 배임 혐의 무죄 및 해임 무효가 확정됐다. 현재 한 위원장 후임 방통위원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되는 이동관 대통령실 대외협력특별보좌관은 이명박 정부 청와대 대변인·홍보수석·언론특보 등을 지낸 인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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