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세가 하락으로 역전세가 급증하고 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전세계약 중 역전세 비중은 지난해 1월 25.9%에서 올 4월 52.4%로 2배가량 늘었다. 올 1~4월 아파트 전세계약의 47%가 역전세였다는 분석도 있다. 전세가 하락은 서민들의 주거 안정 차원에서 반가운 일이다. 한국부동산원의 올 5월 통계에서 서울의 연립·다세대주택 3.3㎡당 평균 전세가격은 529만원으로 2년 전(566만원)보다 37만원 하락했고, 가장 비쌌던 2022년 1월(603만원)보다는 74만원 낮다.
문제는 전세가 하락으로 세입자가 집주인에게 전세금을 제때 돌려받지 못하는 상황이 늘어날 수 있다는 점이다. 계약 기간이 만료되면 세입자는 응당 집주인으로부터 보증금을 전액 돌려받아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집주인이 차액을 메울 돈이 없거나, 기존 가격을 유지하면 신규 전세계약이 이뤄지지 않아 세입자는 보증금을 제때 돌려받기 어렵다. ‘임대차 3법’ 시행으로 2021년 상반기부터 지난해 여름까지 전세가가 급등해 이런 역전세 상황이 ‘전세사기’ 못지않게 서민들에게 심각한 피해를 줄 우려가 있다. 전세금 반환 소송을 해도 4~6개월의 시간이 걸린다.
전문가들은 당장 올 하반기 29만호, 내년 상반기 31만6000호의 전세 기한이 만료된다고 보고 있다. 전세계약이 개인 간 거래여서 정부가 개입할 사안은 아니지만 세입자 보호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1일 “역전세 혼란을 막기 위해 제한적으로 대출 규제 완화를 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세금 반환이 어려운 집주인들에게 대출을 늘려주겠다는 얘기다. 필요한 정책이라고 본다. 다만 그렇더라도 대출 규모는 전세금 차액으로 제한하고 대출 금리에 혜택을 부여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다주택 투기꾼이나 법정 상한(5%)을 크게 초과해 보증금을 올려받은 ‘얌체 임대인’이 이득을 취하지 못하게 정책을 정교하게 설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