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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 케어러 대책 제대로 마련해야

“뭐가 되고 싶니, 이런 것 좀 그만 물어봤으면 좋겠어요.”

막 중학생이 된 아이의 이 한마디에 잔뜩 지친 삶이 묻어났다. 뇌병변장애 여성의 사건 지원을 위해 집에 찾아갔다가 만난 이 아이는 중증장애인 엄마와 단둘이 살고 있었다. 할머니마저 얼마 전 돌아가시면서 사실상 모든 집안 살림을 도맡아 하는 중이었다. 거동이 어려운 엄마 대신 자신을 키워주신 할머니에 대한 고마움을 엄마 돌보는 일로 옮겨와서 매일 버티고 있던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변호사

아이를 장기적으로 지원할 방법을 열심히 찾았으나 학교나 교육청 어디에도 돌봄노동 중인 학생을 위한 지원체계는 없었다. 담임 선생님도 가정 상황을 잘 모르는 눈치였다. 혹시 동사무소나 구청을 통한 지원은 가능하지 않을까 싶었지만 역시 없었다. 지역사회 복지체계는 대개 수요자로부터 신청을 받아 작동되는데 아이 혼자 그 신청을 잘하길 기대할 수는 없다. 게다가 안타깝게도 신청 기준과 재산 기준 모두 아이의 상황을 약간씩 비켜가고 있었다.

질병, 장애, 중독 등으로 일상생활의 제약이 큰 가족 구성원을 직접 돌보는 아동과 청년을 ‘영 케어러(Young Carer)’라고 한다. 의미가 조금 다르긴 하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소년소녀가장’이라 일컫기도 했고, 요즘에는 가족돌봄 청년, 가족돌봄 아동청소년과 같은 말로 부르기도 한다.

이 ‘케어’라는 단어는 수많은 일들을 내포한다. 대부분의 가사, 치료나 투약 그리고 간병에 관한 일, 목욕과 용변 처리, 이동과 같은 물리적 돌봄은 물론 감정적·정서적 돌봄까지 24시간 365일 끝이 없는 중노동이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아직 영 케어러의 규모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조차 없다. 청년 문제를 통해 조금씩 언급되기 시작하더니, 작년 말에야 보건복지부가 ‘가족돌봄 청(소)년 실태조사’를 실시했고, 지난 4월 말 그 결과를 발표했다. 이 실태조사에 참여한 810명의 가족돌봄 청년(만 13~34세)들은 주당 평균 돌봄시간으로 21.6시간을 쓰고 있었고, 평균 돌봄기간도 거의 4년이나 되었다. 이러한 가족돌봄 청년의 우울감 유병률은 약 61.5%로, 가족을 돌보지 않는 청년(8.5%)의 7배로 조사되었다.

정부의 이번 실태조사에서 초등학생 영 케어러는 제외되었기에 초록우산어린이재단이 지난해 조사한 실태조사를 추가로 들여다보면 이러했다. 재단의 지원을 받는 만 7세에서 24세까지 응답자 1494명 중 거의 절반이 ‘가족돌봄을 제공하고 있다’고 답했고, 놀랍게도 이 중 157명(10.5%)이 초등학생이었다. 5년 넘게 가족을 돌보고 있다는 응답자 194명 중 117명이 중·고등학생인 것을 보면 초등학생 때부터 시작된 돌봄의 굴레가 계속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영 케어러에 대한 가장 선진적인 제도를 갖추고 있다고 평가받는 영국은 비교적 일찍 이 문제를 수면 위로 끌어올려 제도화했다. 영국의 아동가족법은 가족 내 성인 및 아동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있는 18세 미만의 사람을 영 케어러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영 케어러 지원에 대한 구체적 내용을 별도의 법률인 돌봄법에 담고 있다.

우리는 이제야 영 케어러 문제를 들여다보는 중이다. 정부는 가족돌봄 청년 실태조사에 따른 후속조치를 마련하고 있으며, 지방자치단체의 시범사업이나 민간재단 등의 복지사업이 몇 군데 진행되고 있다. 그런데 법에 근거한 지원이 아니다 보니 지원 대상이나 내용이 제각각이다. 관련 법률이 여러 개 국회에 발의되어 있거나 발의할 예정이지만, 실제 입법까지는 요원한 상황이다.

초저출생 및 초고령 사회로 급격하게 증가할 수 있는 영 케어러를 위해 제대로 된 법률과 정책이 필요하다. 초등학생 영 케어러도 포함하여 지원해야 한다. 숫자 위주의 ‘발굴’ 그 자체가 중심이 아니라, ‘수요자 맞춤형’ 지원을 어떻게 실현할지 정책 구상 초기부터 적극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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