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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3.06.05 03:00

수정 2023.06.05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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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기만 하면 문화 혜택을 누리며 여가 활동을 할 수 있고,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을 손쉽게 구할 수 있다(물론 돈이 있어야 하지만). 학교, 학원, 도서관, 병원, 약국, 영화관, 백화점, 마트, 놀이터, 공원, 운동장, 헬스장, 목욕탕, 식당, 카페들이 줄지어 서서 손님들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농촌 사람들은 집 밖을 나가면 눈에 보이는 게 산과 들이고 비닐하우스고 축사들이다. 내가 사는 산골 마을은 미장원도 없어 큰 면 소재지나 시 지역까지 가야만 한다. 치과도 한두 시간 차를 타고 진주, 창원, 대구까지 가는 사람이 많다.

서정홍 농부 시인

서정홍 농부 시인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이 전국 읍·면에 살고 있는 농촌 주민 700명을 대상으로 문화·여가 활동 실태를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농민이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것은 텔레비전 보기, 라디오와 음악 듣기로 나타났다고 한다. 문화 혜택을 누릴 곳이 거의 없고, 있다 해도 돈과 시간이 없다. 농촌은 30~40년 전이나 지금이나 크게 달라진 게 없다.

20년 남짓 농사짓다 보니, 어느덧 나도 모르는 사이에 손가락 마디마디가 휘고 손바닥과 발바닥에 굳은살이 박였다. 몇 시간 동안 쪼그려 앉아 김을 매고 나면 무릎과 허리가 끊어질 듯이 아파 “어이구우…”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나는 가파른 언덕에서 예초기 작업을 하다 미끄러져 무릎 수술을 했고, 아내는 마을 어르신들과 뒷산에 취나물 뜯으러 갔다가 넘어져 발목 수술을 했다. 어찌 우리 부부만 그렇겠는가?

오늘 아침에 아내가 물었다. “여보, 우리 몇 해나 더 농사지으며 살 수 있을까요?” 얼마 전에 마을 어르신이 하시던 말씀이 떠올라 얼렁뚱땅 대답을 했다. “몸뚱이 아껴 무어 하게요. 사람 살리는 농사에 써야지요.”

오늘따라 저녁노을이 보기 좋게 물들었다. 하루 내내 비지땀 흘리며 감자밭에 북을 주고 돌아오는데, 몇억을 들여 지어 놓은 텅 빈 마을회관(노인회관)이 눈에 쏙 들어온다. 몸이 열두 개라도 모자란다는 농사철에, 마을회관을 지나가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든다.

농촌 마을회관에, 나라에서 월급을 받는 정규직 청년이 한 사람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농민들이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다치면 가까운 보건소에 모셔 가고, 큰일이 생기면 119 연락도 하고, 아침마다 혼자 사시는 분들 방문도 하고, 농사짓다 등이 굽거나 골병들지 않도록 몸을 살리는 운동도 같이 하고, 농한기에는 영화 상영도 하고, 한글 모르는 어르신들을 위해 한글반도 열고, 사람과 자연을 살리는 친환경농업도 가르쳐 주고, 철마다 나오는 건강한 농산물 판매도 돕고, 새로운 정보도 알려 주고, 해와 바람과 물로 에너지 공급을 늘리고, 함께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교육 프로그램도 짜고….

이런 일을 잘하려면 나라에서 관심 있는 청년들을 모아 ‘농촌 마을 정규직 청년학교’를 열어 마땅한 교육을 받게 해야겠지. 졸업하면 자격증도 주고 말이야. 그렇게 되면 전국에 있는 3만개가 넘는다는 마을회관이 사람들로 북적거리고 희망이 넘쳐 나지 않을까. 3만명이 넘는 청년에게 우리 겨레 ‘생명의 텃밭’인 농촌을 살리는 좋은 일자리를 줄 수도 있겠지. 앞으로 닥쳐올 지구 가열화와 기후위기도 줄일 수 있고 말이야. 너무 지나친 건 아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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